성욕없는 여자에게 복음은 언제?

새 치료제 내년 시판…性장애 연구 이끌지 관심

서울시립 보라매 병원 비뇨기과 손환철 교수와 산부인과 전혜원 교수가 지난달

초 공동으로 18~52세 여성 504명을 대상으로 ‘여성 성기능장애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 40세 미만의 여성 43.1%가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은 예상보다 훨씬 많지만 사회통념상 치료를 위해 약물이나 병원을

찾는 이는 극히 드물다.

독일계 제약사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여성 성욕감퇴 치료제를 빠르면 내년 말

미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아 출시할 것이라고 지난달 말 밝혔다. 북미와 유럽에서

폐경 전 여성 5000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인 이 약물은 성욕감퇴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출시됐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던 다른 여성 성기능장애 치료제들에 비해

이 치료제가 성욕감퇴장애 여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이를 계기로

여성 성기능장애 문제가 양지로 나와 활발하게 논의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성의 말 못하는 고민을 풀어줄 새 치료제 시판을 앞두고 성욕감퇴를 포함한

여성 성기능장애 연구와 치료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 40세 미만 43%가 성기능장애, 그 중 절반이 흥분장애

여성 성기능장애(FSD, Female Sexual Dysfunction)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충분한 성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거나, 성적 흥분이 유지되지 않아 여성이 고통을

느끼게 되는 상태를 이른다. 1998년 미국 여성성기능장애학회는 여성 성기능장애를

△성욕감퇴장애 △성적흥분장애 △오르가즘(절정)장애 △성적통증장애(성교통, 질경련)로

분류했다. 이중 성적흥분장애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정신과협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IV)’에 따르면 성욕감퇴장애(HSDD,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는 성적 흥미나 욕구가 줄어들고 성적인 생각이나

환상이 사라져 절망감을 안기고 대인 관계를 어렵게 하는 성기능장애로 정의된다.

성적흥분장애는 성행위가 끝날 때까지 성적 흥분이 지속적으로 또는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거나 유지 되지 않는 장애다.

절정장애는 성적 흥분상태에는 도달하지만 극치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통증장애는

성행위 직전이나 도중 혹은 직후에 지속적으로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통증

때문에 성행위를 기피하게 되는 성교통과 성행위를 할 때 질에 심한 수축이 일어나

성행위를 할 수 없게 되는 질경련으로 나뉜다.

손환철, 전혜원 교수가 조사한 ‘여성 성기능장애 유병률’에서도 성기능장애가

있다고 대답(복수 응답)한 여성 중 성적흥분장애를 겪은 여성이 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욕감퇴장애 44%, 분비장애와 만족장애가 각각 37%, 통증장애 34.6%, 오르가즘장애

32% 순이었다.

▽ 국내 여성 성기능장애 연구의 현주소는?

많은 여성이 여러 종류의 성기능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막상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드물다.

전혜원 교수는 “설문 조사 결과 40세 미만의 여성 10명 중 4명 이상이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치료 사례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 성기능장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성기능 장애가 있어도 성관계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고 사회

분위기상 밖으로 표출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다른 질환에 비해 연구 진행이 더디다는

것이다. 여성 성기능장애에 대한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직 활발하지

않다. 국제여성성건강학회도 1990년대 말이 돼서야 생겼다.

국내 연구는 여성의 질 윤활작용의 기전을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질

윤활작용 문제는 남성의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장애로 질혈류량 감소, 호르몬 감소,

신경전달 장애 등과 관련돼 있다. 갱년기나 폐경기 이후 호르몬 감소가 주 원인이지만

최근에는 젊은 여성층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월 전남대 비교기과 박광성

교수가 국제성의학회지에 ‘수분통로단백(아쿠아포링)’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질 윤활작용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좀 더 접근했다는 평을 들었다.

국내 여성 성기능장애 연구는 윤활작용과 관련한 주제를 제외하고는 기초적 연구에

그치고 있다. 전 교수는 “국내의 여성 성기능장애 연구는 특정 주제를 제외하고는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거나 자극을 주고 변화를 측정하는 수준의 기초적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치료를 원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치료제가 출시되면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새 치료제는 ‘핑크 비아그라’와 달라

흔히 ‘핑크 비아그라’로 불리며 시판중인 ‘여성용 비아그라’는 성욕감퇴 치료제가

아니다. 전남대 박광성 교수는 “내년에 출시된다는 성욕감퇴 치료제 ‘플리반세린’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성적 욕구를 유도하는 약물로 ‘핑크 비아그라’인 여성용 비아그라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용 비아그라는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음경 해면체 내부의 평활근을

이완시키고 혈액의 유입을 증가시키는 것처럼 여성의 골반 쪽으로 가는 혈액을 늘리는

기능을 한다. 파란색의 남성 비아그라와 대비되게 ‘핑크 비아그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핑크 비아그라는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나 더 이상의 임상

시험은 중단된 상태다.

박 교수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한 남성 10명 중 7명이 발기력 향상을 경험할

만큼 효과가 뚜렷했지만 여성은 성기능이 남성의 발기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핑크 비아그라가 크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발기부전 치료제가 성적

욕구는 있지만 기능이 없는 남성을 치료하는 것에 비해 여성 성욕감퇴 치료제는 폐경

등에 의해 성적 흥미나 욕구가 줄어들고 성적인 생각이나 환상이 사라지는 등 성욕

자체가 없는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 여성 성욕감퇴 치료제 폭발력 있을까?

올해로 출시 10년을 맞은 비아그라는 세계에서 1초에 약 6명이 복용한다는 집계가

있을 만큼 널리 쓰이는 남성 성기능장애 치료제다. 비아그라는 국내 부작용 신고사례

1위 의약품이라는 오명도 있지만 단순한 치료제의 의미를 넘어 음지에 있던 성을

양지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아그라처럼 플리반세린도 여성 성기능장애를 사회 이슈로 부각시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치료에 효과는 있겠지만 발기부전 치료제처럼 파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능장애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성기능장애의 원인과 종류, 치료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한 가지 약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얻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2상 시험까지는 긍정적 결과를 얻었지만 아직 3상 시험이 완료되지

않은 만큼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범위가 넓고 유형이 다양한 여성

성기능장애의 특성상 남성용 발기부전 치료제처럼 폭발적이지는 않겠지만 성욕감퇴

치료제를 계기로 더 다양한 약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그는 “여성 성기능장애는 여성의 삶의 질 문제”라며 “여성 성기능장애 연구가

더 활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여성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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