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엔 따뜻한 정성이 묘약”

복지부 치매센터장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

“멀리서 절 만나러 오는 치매 환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가슴 저리도록 감사해요. 목욕재계를 하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불편한 몸으로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병원에 오죠. 불과 몇 분 제 얼굴을 보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써주는 환자들이 제게는 가장 귀한 손님입니다. 매일 한 시간 일찍 진료를 시작하는

것은 이토록 귀한 손님과 조금 더 대화 시간을 갖고자 하는 제 마음의 보답인 셈입니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51) 교수는 1995년부터 13년째 기억장애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의 치매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 교수를

첫 번째로 꼽는 것은 그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치매 환자를 진료한다는 사실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환자를 가장 귀한 손님으로 여기는 그의 진료철학 때문이다.

“처음엔 진료할 때 항상 기가 죽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피부과 의사들은 진료해서 병이 나으면 나름 목에 힘도 주고 할 수 있는데, 치매

의사는 내가 치료한다고 당장 좋아지는 게 아니니까 항상 미안할 수밖에 없거든요.

치매 의사들은 빨리 진행되는 치매 속도를 늦춰주는 것이 전부죠. 그래서 환자 보호자들의

불평 섞인 호소에 시달리는 사례도 많고, 그럴 때마다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어요.

그렇게 치이다 보니 40대 때는 환자를 질병으로 볼 수밖에 없었죠.”

귀한 손님 대하듯 맞이하고 진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 교수는 나름의 진료 철학을 갖게 됐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이들도 나와 똑같이 귀한 인생인데 세포의 일부가 잘못되는

바람에 이렇게 치매에 걸렸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면서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나에게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진료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환자를 처음 맞이하면 3시간에 걸쳐 예진과 인지기능검사를 실시해

기록을 저장한다. 또 환자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 환자의 경제상황, 환자의 기억장애

중증도, 비밀스러운 특징 등을 적어둔다. 그는 “진료를 보기 전에 작성해둔 내용을

미리 읽어보고 재진을 보기 때문에 환자의 정보가 녹아들어간 진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규 외래시간보다 1시간 이른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한 명의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진료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다. 그는 하루에 4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그는 한국에서 기억장애 환자들을 가장

많이 진료하는 의사로 꼽힌다. 나 교수가 이처럼 정성스레 진료하는 환자는 1년이면

300여 명에 이른다.

기억장애 생기는 알츠하이머 발병 늘어

나 교수는 서울대 의대 본과 1학년 시절, 해부학교실에서 신경생리학, 신경해부학,

신경병리학을 배우면서부터 신경과에 매력을 느끼고 신경과를 전공할 결심을 굳혔다.

나 교수는 서울대병원 전공의 1년차 때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환자의 언행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좌측 뇌혈관이 다치면 말을 잘 못하는데,

우측 뇌가 손상되면 시계를 그릴 때에도 오른쪽 반만 그리는 모습이 신기했죠. ‘세상에

이런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는 인지기능을 연구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외국에선 인지신경학자들이 치매 환자들을 돌봐요. 저 역시 인지기능을 연구하고

자연스레 치매 환자를 돌보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뇌경색, 뇌출혈처럼 혈류가 감소해 뇌세포가 줄어드는 혈관성

치매 환자가 더 많았지만, 최근엔 세포가 죽어가면서 기억장애가 생기는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높아져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나 교수는 “최근 혈관성 치매를 일으키는 발병인자가 알츠하이머 발병을 부추기고,

병을 빨리 진행시킨다는 보고도 있다”면서 “개인이 불안, 우울, 만성 스트레스에

심하게 시달리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앓는다면 ‘예쁜 치매’ 될 수 있게

그는 사회적으로 치매 환자는 말썽이 많은 사람, 손 많이 가게 하는 사람,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가 진료하는 환자 중에서는

이른바 ‘예쁜 치매’에 걸린 환자들이 많다. 예쁜 치매 환자는 공격적, 폭력적인

치매 환자와 달리 명랑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성향을 보인다.

이들 역시 무슨 일을 할 때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나 어디 가지?”

“나 뭐하고 있었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보호자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해 “누구신지 몰라도 도와줘서 참 고마워요”라는 말을 한다. 나 교수는 예쁜

치매 환자를 돌볼 때 유독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예쁜 치매에 걸릴 수 있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설이긴 하나 평소 성격이 괴팍했다면 치매에 걸려도 그럴 가능성이 높고,

치매 환자가 보호자와 과거에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면, 보호자가 아무리 자신을 잘

돌봐도 그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환자 보호자들을 만나왔다. 치매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는

보호자는 환자의 기억장애나 실수를 지적하려는 의욕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환자에게

상처를 주고 더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다정한 말, 환자에게 전달돼 증세 호전

나 교수는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마라토너 이봉주와 마라톤을 한다는 심정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학계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료는 평균 10~13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끝없이 칭찬해주고 따뜻하게 대한다면 이 마음이 환자에게 온전히

전해진다는 것.

한 사례로 50대 초반에 치매에 걸려 11년째 나 교수에게 진료를 받는 한 남성이

있다. 그는 성실하고 제 가족밖에 모르는 가장이었다. 그런데 충동을 억제하는 뇌의

전두엽 치매가 발병하면서 첫 증상으로 외도를 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치료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 나 교수는 “부인의 눈물겨운 간호가 남편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2006년 4월부터 지난 4월까지 대한치매학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현재는

2005년부터 진행 중인 보건복지가족부 치매센터의 수장을 맡고 있다. 복지부 치매센터는

전국 45개 치매센터에 등록된 50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국인 치매의 기초자료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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