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정화요법이 청춘을 돌려줘?

"중금속 배출, 60여 병 예방"… 미국선 '돌팔이 의료' 취급

#1. A

대학의 B 교수(50·여)는 최근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했다.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머리를 쥐어짜면서 고통을 호소해 급히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모셨다. 다행히 아무 일은 없었지만, 어떤 특별한 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의사의 질문에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1주일 전 어머니에게 몸의 피를 깨끗이 해줘 청춘을 돌려준다는 ‘혈액정화요법’ 주사를 맞게 했기 때문이다.

#2. 최근 공직을 사임한 고위공무원 C 씨(56)는 지인들이 마련한 위로연에서 언쟁을 벌였다. 최근 비싼 돈을 들여 ‘혈액정화 주사’를 맞은 뒤로부터 주력이 세졌다고 자랑했더니, 누군가 “여기 또 한 사람 돌팔이에게 속았네”하며 면박을 줬기 때문. 그는 “정부의 고위 공무원도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치료를 받고 있으니…”하며 혀를 찼다.

C 씨는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효과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 등 부유층 인사 사이에 수백 만 원에서 최고 1000만 원 이상을 들여 ‘혈액정화주사’를 맞는 바람이 불고 있다. 주사를 맞는 사람은 혈액에서 중금속 등의 독소가 배출돼 노화를 늦추고 혈관질환 등을 예방할 뿐 아니라 심지어 정력과 주력(酒力)도 강해진다고 믿고 있다.

이 요법은 ‘킬레이션 요법’의 하나로, 시술은 혈액응고 방지제인 헤파린, 염화마그네슘, 비타민B, C 등의 성분을 복합 아미노산인 디소듐 EDTA에 섞은 주사제를 몸속에 정맥주사로 놓는다. 이 요법을 시술하는 의사들이나 주사액 제조사 관계자들은 주사제 속의 아미노산이 혈관 벽에 쌓인 납,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과 결합해 소변으로 배출시켜 동맥경화증, 심장동맥질환, 말초혈관질환 등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5, 6년 전 서울 강남지역에서 시술되기 시작한 이 요법이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거래처가 300여 곳에 이른다는 EDTA 제조사 관계자의 말에 따라 시술하는 병,의원도 대략 이쯤으로 추산된다. 한의원도 시술에 뛰어들어 날로 퍼지는 추세다.

그러나 미국에서 1950년대 시작된 이 요법이 국내에서

혈액정화요법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의사들도 많고, 시술을 받는 사람들은 노화를 막는 최신 치료법인 줄 잘못 알고 있다. 이 치료법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미국의사협회(AMA) 등의 단체로부터 대표적 사이비 의료라고 공격을 받고 있는 치료법이다. 미국 의료계에서 사이비 의료로 배척받고 있는 치료법을 한국의 일부 의사와 한의사들이 권하고 있는 것.

▽ 시술비용 고액… 강남 분당 등서 성행

이 시술을 받으려면 우선 40만~50만 원을 내고 전반적인 건강검진과 모발, 혈액 속의 중금속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1회 시술비가 10~15만 원 수준이며 일주일에 2, 3차례씩 30~45차례 시술을 받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0번 정도 맞은 뒤 중금속이 얼마나 빠졌는지 다시 중간 검사를 한다. 일부 의사들은 1년을 맞을 것을 권하기도 한다. 이런 의사의 말에 따라 장기 시술을 받으면 턱없이 비싼 돈이 들어간다.

상당수 개원가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 요법이 뇌중풍, 치매, 류머티스 관절염, 발기부전, 만성피로, 전신무력증, 동맥경화, 협심증, 당뇨병, 심장질환 등 무려 60여 가지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효능만 봐서는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EDTA 국내 제조사인 ㈜메디월드생명공학 측은 “미세한 혈관이 막혔거나 뇌 속 깊숙한 혈관이 막혀 수술이 불가능할 때 이 요법은 혈액 순환을 도와준다”며 “심장혈관 질환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등 작은 혈관들이 손상된 질환의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킬레이션 처치는 의학적으로 제한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한양대병원 산업의학과 이수진 교수는 “이 요법은 중금속에 중독된 응급환자 치료에만 사용돼야지 그 밖의 다른 목적으로는 절대로 쓰여서는 안 된다”며 “몸에 이로운 미네랄까지도 흡착해 배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요법은 특히 아연을 많이 배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경우 면역시스템이 손상되고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

경희의료원 응급의학과 최한성 교수는 “몸속 중금속이 단순히 혈액에만 존재한다면 광고에 대해 수긍을 하겠지만, 근육이나 장기에 쌓인 중금속까지 제거하지는 못한다”며 “광고 내용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이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는 없다”고 말했다.

▽ “부작용 극히

적다” vs “사망사고도 있었다”

시술하는 측은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처치를 받으면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은 극히 적다”며 “관상동맥 우회수술의 경우 100명 당 3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데 비해 EDTA 처치는 10만 명 당 1명 정도의 확률로 부작용이 나타나는 매우 안전한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희대 신장내과 이태원 교수는 “보고된 부작용만 해도 신장 독성, 저칼슘혈증, 정맥염증, 당뇨병 환자의 저혈당, 울혈성 심부전 등이 있다”며 “부작용이 없는 시술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미국 FDA는 올해 초 킬레이션 요법으로 인해 사망 사고가 있었다고 경고했다.

머리카락, 혈액, 소변 등을 검사해 중금속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이를 시술 중인 부산의 한 개원의는 “시술을 하면 처음 검사 때보다 중금속이 70% 가량 줄어든다”며 “생활습관을 바꾸면 효과가 배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오범진 교수는 “요즘같이 오염된 환경에서 중금속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무시해도 될 만한 중금속 수치가 적힌 결과지를 제시하면 누구라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수익 위한 과잉진료 문제… 美선 “비윤리적 요법으로 금지돼야”

미국에서 보완요법을 옹호하는 의료인들의 모임인 ‘ACAM(American College for Advancement in Medicine)’은 대표적인 킬레이션 옹호 단체이다. ACAM은 심장동맥이 막힌 환자가 수술을 받는 것보다 이 치료법을 받는 것이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1989년 미국 FDA와 심장협회(AHA)는 ‘미국의 10대 사이비의료’에 킬레이션 치료법을 포함시켰다. ACAM에서는 반발 자료를 냈지만, 킬레이션 요법의 효과를 입증하는 대규모 비교연구 자료는 없다.

미 연방통상위원회(FTC), 국립보건원(NIH), 질병통제선터(CDC), 미국의사협회(AMA), 미국심장협회(AHA), 미국내과의사협회(ACP), 미국가정의학회(AAFP) 등 보건 의학 관련 단체들도 같은 입장이다. 1998년 FTC는 ACAM이 웹사이트와 책자를 통해 근거가 불명확한 이 요법을 광고하지 못하도록 고발했다.

미국 의료인들의 비영리 공익단체인 사이비의료대책위원회는 웹사이트 ‘돌팔이감시’(Quackwatch)를 통해 킬레이션 요법의 부작용을 홍보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킬레이션 요법이 비윤리적이므로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의대 교수는 “정상적으로 진료하면 수익이 날 수 없는 의료시스템도 문제지만 수익이 된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매달리는 의료인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용어풀이 : 킬레이션 요법이란?

킬레이션은 그리스 말로 ‘집게발’을 의미한다. 금속이나 미네랄이 다른 물질에 결합하는 현상을 일컫는 화학 용어다. 예를 들어 혈액에서 산소를 전달하는 헤모글로빈은 철의 킬레이션 물질이 된다. EDTA(에틸렌디아민4초산)는 혈액 속의 중금속을 집게발처럼 붙잡아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강경훈 기자 kwkang@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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