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하나 있지, 환자와 통하는”

‘詩 쓰는 의사’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잊어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소년이

되어보는”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의 서홍관(50) 박사가 쓴 ‘꿈’이란 시다. 그는 시인이면서 의사다. 그가

‘실천문학’에 발표했던 이 작품은 고은 시인이 1998년 12월 16일자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시는 서 박사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서 박사는 1985년에 ‘16인 신작 시집’(창작과비평사)에 ‘금주 선언’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1989년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창작과비평사), 1992년 시집 ‘지금은

깊은 밤인가’(실천문학사)를 출간했다. 그는 28년 전 의대에 다니던 시절부터 시를

썼다.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이었을 때, 5·18민주화운동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어요.

그때 휴교령도 내렸죠. 시대적 고민, 나라 걱정을 일기처럼 써서 서울대 대학신문에

보냈어요. 그때 ‘흙바닥 위에서’라는 시가 제 첫 습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서 박사는 본과 3학년부터는 문예부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문예부 ‘문학의 밤’

행사에서 그에게 시인의 삶을 열어주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1983년에 신경림 시인을 만났어요. 제가 쓴 시를 보더니 ‘시가 좋다’면서

계속 시를 써보라고 하셨어요. 이후 무의촌에서 군복무를 대신하던 시절에도 제가

있는 전라북도 선유도까지 방문하셔서 등단을 권유하셨죠.”

서 박사는 금연클리닉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밖에도

암 예방검진센터에서 진료 받을 환자를 예진하고, 검진 결과에 대한 상담과 추후

관리를 맡고 있다. 주기적인 금연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시작

활동이 의사의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방해 안 받는 공간에서 한 가지에만 집중할 때 좋은 시상이 떠오르거든요. 환자를

진료할 때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좋은 시상을 떠올리듯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정성과 애정을 갖고 진료하려 애쓰게 됩니다. 타성에 젖어 진료하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는 환자에게 금연을 강요하거나, 무조건 약을 처방하는 방식은 지양한다. 자신의

시를 읽고 독자가 무조건 감동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진료철학은 ‘환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고혈압 환자에게는

흡연으로 생길 수 있는 동맥경화, 심장혈관질환의 위험성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어린 자녀가 있는 흡연자에겐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담배가 자녀와 자신의 건강에

얼마만큼 악영향을 주는지 알려준다.

대학생인 두 아들을 둔 서 박사는 공부만 했던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자식들에게는

공부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의사가 되고 보니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사가 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됐어요. 혼자 똑똑하다, 잘났다고 생각하다보면 스스로의 틀 안에 갇히게 돼요.

환자를 만났을 때 대화를 하고 깊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처럼 시를 써야만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라는 뜻은 아니지만, 분명히 깊은 관련이 있지요.”

그는 ‘소통’을 강조했다.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 독자와 소통하는 시인. 즉,

의학과 문학은 그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일에 열린 ‘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의 의사 문학제에서도 ‘환자 투병기, 그 치유와 교육적 기능’을

주제로 강연했다.

“의사는 문학적 능력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진료할 때는 물론이고 의사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때에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죠. 하버드 의대에서는 의대

커리큘럼에 글쓰기와 읽기 강의가 포함돼 있어요. 의사가 자기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글로 써서 잘 알릴 줄 알아야 하거든요. 이 사회에서 의사들이 나서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에게 그런 소양이 부족해요. 이번 광우병이나

AI사태만 해도 우리 의사들이 전문가니까 직접 나서서 올바른 지식을 앞장서서 전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많아도 쉽고 정확한 글에 익숙지 않아 그런 역할을 잘 못하고 있잖아요.”

그는 1999년 인제대 의대에 의사학과 의사윤리학 교실을 만들고 2003년까지 주임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양대 의대에서 ‘의학과 예술’이란 과목의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의대 교육이 자연과학적 교육에만 치중해 있기 때문에 실제로 환자를

진료할 때 방해가 된다며 인문학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 박사는 요즘 16년 만에 발표되는 그의 세 번째 시집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그동안 여러 잡지와 신문에 소개됐던 작품들과 틈틈이 써놓은 시들을 다듬어 묶어볼

계획이다.

“중년이 된 서홍관이 쓴 시는 이전의 작품과는 느낌이 또 다를 겁니다. 금연클리닉

의사로서,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아버지 어머니의 넷째 아들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을 정성스럽게 기록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조경진 기자 nice2088@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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