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과 소셜 미디어

분노의 뿌리를 주목하라

광우병 파동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이미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느니, 미국에서 먹지 않는 고기를 한국에서

하수 처리한다느니, 소 성분이 들어있는 젤라틴으로 만든 약이나 과자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린다느니 온갖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정상적인 논의가 통하지 않는

‘비이성적 사회(Insane Society)’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광우병 괴담에 빠진 네티즌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알리는 글에

몰려가 원색적인 공격을 가하는 ‘집단 히스테리’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심리에는 정부는 애당초 못 믿겠다, 과학자들의 말도 못 믿겠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인의 목숨을 희생하니 못 믿을 수밖에 없다, 국제수역기구도

미국에 휘둘리니까 못 믿는다는, 세상에 대한 혹독한 부정이 깔려 있는 듯하다.

문제는 정부가 일부 네티즌들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메커니즘의 실루엣도 모른다는

데 있다. 대책이 있을 수가 없고, 대책이라는 것도 불난 데 기름 끼얹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광우병 파동을 ‘우리 사회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마그마가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란 분화구를 통해 분출한 사건’으로 규정짓고자 한다.

르상티망은 응어리, 복수감 등을 뜻하는 철학용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처음 사용한 뒤 철학자마다 뜻을 조금씩 다르게 쓰고 있지만 1970년대 프랑스에서

젊은이들이 고속도로에 올가미를 만들어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불특정 부유층’을

살해하는 바람이 불자 윤리학의 중심용어가 됐다.

소셜 미디어는 지금까지의 올드 미디어의 일방향성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개인들의

의견이 블로그, 클럽 등에서 자유롭게 소통되며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가리킨다.

웹 2.0식 여론인 셈이다.

진가는 2005년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참의원을 해산했을 때 극명히 표출됐다.

당시 고이즈미는 참의원에 구 정치인의 돈줄 역할을 했던 우정국을 개혁하는 법안을

상정했다가 거부당하자 참의원을 해산하고 재선거를 치르게 하는 ‘초강수’를 뒀다.

올드 미디어는 물론이고 인터넷언론에서조차 고이즈미가 무리수를 뒀다고 평가했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는 압승했다. 바로 ‘블로그 혁명’ 덕분이었다. 인터넷의

‘개인 미디어’들은 고이즈미의 합리적 개혁에 손을 들어줬고, 인터넷 혁명으로

승화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금 소셜 미디어가 올드 미디어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Daum) 블로그뉴스의 인기 기사는 클릭 수가 10만 건을 훨씬 넘는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들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만약 ‘언론 프렌들리’라면

이런 소셜 미디어의 움직임도 주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정부는

도대체 소셜 미디어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특히 최근 들어 소셜 미디어는 태깅, 트랙백, RSS 등의 기술적 지원에 힘입어

전파력이 급속도로 커졌다.

일부 정치인들은 인터넷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며, 대선 때 증명됐다고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한다.

그렇지 않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에 개혁 또는 진보세력이 ‘밀어 줄’ 대상이

없어 일테면 전쟁이 성립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들은 표심을 행사할 수도 없어

낙담한 채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응어리를 키웠다. 르상티망의 뿌리를 내렸고 조금씩

동조의견들이 늘어났다.

소셜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IT 프렌들리’한 10~20대가 모이는 공간이다. 10대와

20대의 상당수는 조령모개하는 입시제도,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 등으로 응어리가

잔뜩 쌓였지만 기존 언로에서는 해소할 통로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주류 사회와 다소

다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집단감응’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서가 용암처럼 꿈틀거리다 급기야 하나 둘씩 분화구를 통해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똑똑한 정부’라면 여론의 변화에 더듬이를 세우고, 르상티망을 달래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을 포용하려고

하기보다는 지지 세력의 환심을 사려고만 했다. 승자끼리 권력싸움에 몰두했다. ‘고소영,

S라인 인사’로 자기 식구만 챙겼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르상티망을 키워주는 일만

한 것이다.

정부는 소셜 미디어에서 키워드가 대운하, 의료시스템, 식코(Sicko)로 바뀌며

분노의 감정이 휘몰아칠 때 감을 잡았어야 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직후

소셜 미디어에서 분노의 함성이 들릴 때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능 아니면 무신경이었다. 그들에게는 올드

미디어 외의 세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MBC PD수첩이

이번 파동의 원흉이라고 몰아세우는데 이는 표피적 시각이다. PD수첩은 도화선이고

촉매였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광우병, 유전자조작(GMO) 옥수수, 인터넷 종량제 등의

온갖 분화구로 용암이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한국사회의 르상티망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네티즌들 중에 청소년이나

20대의 사고유형은 걱정이 될 정도다.

정부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는다. 미국 축산농이 한국에서

쇠고기 품질을 인정받아야 장기적 매출에 도움이 되는 ‘장사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미국은 한국에 쓰레기 쇠고기를 수출하려고 안달이라고 믿는다. 선진국의 사회 전체를

매도하고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위도 부정했다. 미국 쇠고기에 대해 아무리 합리적인

설명을 해도 대답은 언제나 “너나 ×먹으세요”다. 일부 정치세력, 연예 기획사들은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해 병적 르상티망을 키우고 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우리 편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전형적 유아유아(唯我幼兒)의

사고방식이다. 조만간 대한의사협회가 ‘자녀에게 쇠고기를 먹여도 되는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아도, 이런 사고유형의 네티즌에게 통할지 미지수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돌아가서 여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소셜 미디어에서 표출되고 있고, 3분의 1 이상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르상티망을

달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들을 좌파세력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들도

엄연한 우리의 국민이다. 이들의 상처 난 가슴을 치유해야 한다.

청렴결백한 관리를 중요 직책에 임명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정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그늘진 곳에 힘을 주는 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 이 응어리는 계속 분화구를 옮기면서 분출하며 정부를 괴롭힐

것이다.

물론 소셜 미디어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필수다. 촛불시위를

불법시위로 규정해 국민을 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꾸준히 네티즌들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육계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소통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를 가르치기에 앞서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하고,

진실을 걸러내는 대화의 기술, 민주주의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비합리적 르상티망이

팽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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