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불만 소화하고 건강밥상을”

한양대병원 백희준 영양사

“당뇨병 환자들은 배가 고파도 보통 사람과 달리 음식을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죠. 평생을 칼로리와 혈당을 계산하며 고민해야 하거든요.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은

입이 터지도록 상추쌈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생과일이나 생채소를 먹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보니 환자가 원하는 음식을 제공했다가 병이 악화될 수 있어요.”

한양대병원 영양과 백희준(45) 계장은 환자의 맛과 건강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그는 1986년 6월에 입사해 22년 동안 한양대병원 밥상을 차리면서 환자의 불만을

온몸으로 ‘소화’해 왔다.

“환자들이 ‘이게 먹으라는 음식이냐’며 식판을 엎을 때는 가슴이 무거위지죠.

환자들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밥알은 죽어있고, 간도 밍밍하고…. 병원 밥은

제가 먹어도 맛이 없어요. 환자들은 먹는 데 제약이 많아서 영양사도 고민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건강한 식단을 좀 더 맛있게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생각하죠.

저도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먹는 낙’을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거든요.”

그는 ‘영양학 박사’다. 박사 학위를 딸 때에는 ‘이것이 내 인생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에 들어오자마자 그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뇨병 환자는 절대로 단순당분을 섭취해선 안 된다는 지침이 몇 년 전부터는

총열량 10%는 설탕이나 당분을 첨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바뀌었죠. 의학이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지침들은 계속해서 바뀔 겁니다. 환자를 위해 늘 공부해야

합니다.”

백 박사는 “의료진과 함께 팀을 이뤄 환자들을 진료하는 등 영양사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밤새 외국 논문을 찾아 공부하는

등 ‘자기 발전’시간을 갖느라고 ‘연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그는 입사한 지

17년 되던 해에 40세의 나이로 결혼했다.

한양대병원에는 모두 7명의 영양사가 있다. 직업적인 특성상 병원 영양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품영양학과 전공자여야 한다. 이들은 환자에게 제공하는 △급식의

식단을 짜고 △음식재료를 구입하고 △조리과정을 감독 한다. 대한영양사협회로부터

임상영양사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환자의 식사습관을 조사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식사방법을 교정하는 등 환자의 치료에 한발짝 더 깊이 다가설 수 있다.

백 박사는 틈틈이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직접 만나 음식에 대한 불평, 불만에

귀를 기울인다.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들을 설득하는 일도 백 박사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은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는데 환자들은 그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생기는 불만들이 결국엔 음식에서 폭발하는 거죠.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들과 상담하면, 1시간 중에서 55분이 치료에 대한 불만, 병에

대한 하소연이고 나머지 5분이 음식에 대한 것이죠. 처음엔 ‘이런 이야기를 왜 나에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억울하기도 했죠. 하지만 환자의 고민을 이해하고,

좀 더 식단에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도 병원영양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백 박사는 특정 질환의 환자들이 음식 때문에 겪는 고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선 ‘꼭 지켜야 할 일’이라고 엄격하게 못 박았다.

백 박사가 특히 자주 가는 곳은 소아백혈병 병동이다. 밥투정 하는 백혈병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집에서 엄마를 기다릴 여섯 살 된 아들이 눈에 밟혀 마음이 더욱 저려온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은 치료가 워낙 힘들다 보니 뭘 먹지를 못해요. 이럴 땐

영양은 두 번째 문제이고, 일단 먹는 게 중요해요. 보호자들에게 평소에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이라도 꼭 먹이도록 당부하죠. 닭껍질을 벗겨내 그릴에 구워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스를 찍어먹게 하거나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면 잘 먹어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되도록 붉은 고기는 피해야 하구요.”

백 박사는 “환자가 병을 떨쳐내고 일어서도록 밥상을 차리는 일은 천직”이라며

“앞으로도 평생을 병원 부엌으로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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