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엄마 소아난독증 부른다

무리한 학습 강요 따른 정서불안 탓

3월

초등학교 개학을 두 주일 정도 앞두고 있다. 아이의 공부 욕심이 남다른 엄마들은

이맘때쯤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극성엄마들은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아이를 책상에 묶어놓고, 아이의 수준에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책을 쥐어준다. 이런 엄마의 의도와 달리 결과는 참담한 경우도

있다.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정 모 군의 어머니 김 씨(37)는 지난 1월 아들을

데리고 한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김 씨는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직전 아들

담임선생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들이 학교생활을 할 때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래들 사이에서도 외톨이라는 것이었다. 김 씨는 아들이 시키는 공부는 알아서

잘 해내는 착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병원 검사 결과, 정 군은 부모의 강압적인 학습 강요 때문에 심리상태가 위축돼

학습부진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또래들보다 읽기능력이 다소 뒤쳐진 소아난독증

증상까지 나타났다. 김 씨는 믿기지 않아 기초·학습검사, 지능검사, 주의력

검사를 받도록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발병원인

엄마의 공부하라는 강요가 지나치면 공부할 수 있는 정상적인 기본 바탕을 갖고

있는 어린이들도 반항, 불안, 우울 등의 정서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학습부진이 나타난다.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아이는 또래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학습부진은 어린이가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처음 한글을 배우고 읽고 쓰기를 할 때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해

일시적인 학습부진을 겪는다.

이때 부모는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의 욕심이 지나쳐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는 못해주고

무조건 공부하라는 강요만 하면 아이의 일시적인 학습부진은 난독증과 같은 학습장애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처럼 정서적 문제로 어린이에게 읽기 장애가 생기는 것을 ‘복합적

소아난독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정유숙 교수는 “외국에서는 전체

어린이의 5~10%가 난독증 환자라는 통계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난독증 관련 역학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통계를 참고해 5%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외국과 달리 선천적으로 읽기 장애를 갖는 난독증 어린이가 거의

없다”며 “난독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린이의 대부분은 정서적, 환경적인 원인

때문에 읽기 장애가 나타나는 복합적 소아난독증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글자 한 글자는 읽을 줄 아는데 전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어린이의 학습치료 과정. 실제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문제.

 

▽증상

난독증은 읽기, 쓰기, 셈하기의 학습기능 중에서 읽기 능력에 장애가 있는 것을

말한다. 난독증 환자는 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는 상태이다.

난독증에 걸린 어린이는 통글자(whole word)를 인식하거나 형태소를 해독하는데

있어서 결함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기차’라는 단어의 ‘ㄱ’ ‘ㅣ’ ‘ㅊ’ ‘ㅏ’

같은 낱낱의 형태소는 인식하면서 이 둘이 합쳐진 ‘기’ 혹은 ‘차’는 인식하지

못하거나, 음절과 음절이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 ‘기차’는 읽지 못한다.

읽기 장애를 겪는 어린이는 ‘핑계-빙게’, ‘모욕-목욕’, ‘혓바닥-허파득’, ‘곱습니다-고븝니다’,

‘너구리-구리너’처럼 읽기도 한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유한익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난독증의 유병률 역시 증가한다”며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어린이의 난독증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치료

난독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증상이지만, 꾸준하게 교정 훈련을 하면 치료할

수 있다.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초등학교때 난독증 증상이 나타났다.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 바버라 여사는 글자가 적힌 카드를 가지고 읽기 연습을 반복하도록 지도해

아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난독증을 치료하진 못했지만 장애를 딛고 당당하게 일어선 사례도 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 톰 크루즈는 지금도 난독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영화 ‘미션 임파서블’

‘탑건’ ‘제리 맥과이어’ 같은 수많은 영화에서 보여준 멋진 연기는 모두 대본을 귀로

듣고 외운 것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대본을 읽어주는

개인 코치를 따로 두고 있다.

학습부진과 어린이 난독증 치료를 위해서는 어린이가 느끼는 정서적 결함을 분석해서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의 정서가 안정된 상태였을 때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습 프로그램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소아난독증 임연신 특수교사는 “학습부진이나

난독증을 앓고 있는 어린이에게는 무리한 수준의 학습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서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부모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며 “개인차가 있으나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그때부터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본격적인 난독증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난독증의 치료를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단어 △단순한 단어 △자주

접하는 단어를 그림과 함께 제시하고 쉬운 것에서 점차 어려운 단어순으로 연습해야

한다. 이렇게 연습한 단어를 음절이나 형태소별로 세분화하는 훈련도 해야한다.

▽예방

아이가 평소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평소에 부모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아이의 읽기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

한양대병원 소아정신과 안동현 교수는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지 공부를

잘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부모 욕심으로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병을 만들고

치료해달라며 병원에 데리고 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녀가 읽기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난독증 예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학습부진이나 난독증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대부분 글자만 읽거나 단어만

읽기 때문에, 글을 읽어주거나 읽게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내용 전체를 이해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에 관해 물어보거나 아이 스스로 내용을 요약해 발표하게

하라.

② 아이가 스스로 독서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수준에 맞는 동화책을 읽게 하라.

③ 만화책이나 그림책은 그림을 보고 인상만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때문에 긴 글을

읽는 능력을 방해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만화책 읽는 습관은 들이지

말라.

④ 보상 체계를 이용하라. 책을 잘 읽으면 PC게임을 허락하는 등 상을 주면서

책 읽는 습관을 익히게 하라.

[도움말]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정유숙 교수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유한익 교수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소아난독증 특수교사

임연신
한양대병원 소아정신과 안동현 교수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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