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가족 갈등 뿌리에는 무의식

특정한 인격경향도 갈등 잘 일으켜

“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웃으며 만나서 매번 다툴까요? 할아버지는 늘 ‘자식농사’를

잘못 지었다고 불쾌해하시고 아빠는 얼굴과 목이 빨개져요.”

“매년 명절에 아들이랑 언쟁을 벌이고 있어. 서울 사는 둘째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나를 무시하는걸까? 아들이 왔는데 입 다물고 있을

수도 없고….”

“귀성길에 오를 때엔 늘 ‘이번에는 부모님에게 잘 해 드려야지’ 하고 곱씹으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무엇인가 치밀어 올라와요. 어머니가

아내에게 이번에는 아들 낳으라고 타령하는 것 듣는 것도 끔찍합니다. 늘 귀경길은

답답합니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진 이번 설, 고향길이 즐겁지만은 않았던 사람이 적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척과 갈등을 빚고 나서 가슴에 무거운 짐을 지고 귀경길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TV에서는 명절에 웃음꽃이 피는 가족의 모습만 비치고

남들은 고향길이 설렌다고 하는데 왜 우리 가족은 ‘오순도순’과는 거리가 멀까?

 

갈등의 원인은 명확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많은 사람이

‘명절 때 가족 갈등’하면 고부갈등을 꼽지만 가족 간 갈등은 다양하며 대부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갈등의 실체를 안다고 갈등을 해소할 수는 없지만 가족 관계를

보다 더 가깝고 편안하게 만들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갈등은 무의식의 산물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가족 간에 갈등이 없는 집은 드물며 갈등의

둥지에 무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며

“정신분석학과 두뇌과학(Brain Science)을 알면 명절에 가족갈등을 줄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뇌에는 진화의 산물인 세 개의 뇌가 섞여 있는데 호흡과 온도조절 등을

맡는 ‘원뇌(原腦)’,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가장자리계’, 이성적 판단을 맡는

‘대뇌피질’ 순으로 발전했다. 이 가운데 대뇌피질이 완벽하게 기능해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면 가족 간에 사소한 문제로 싸울 이유가 없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갈등은

가장자리계가 자극을 받아 무의식의 자기애가 상처를 입으면서 증폭된다.

가장자리계가 무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100여 년 전 의학계에 보고됐다. 스위스의

정신분석가 에두아르 클라파레데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몇 분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성 환자에게 손바닥에 핀을 감추고 악수를 해 고통을 줬다. 다음 날 이

환자는 클라파레데를 못 알아봤지만 악수를 청하자 기겁을 했다. 가장자리계는 이처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억, 자동차를 몰거나 피아노를 칠 때의 작업 기억 등을

담당하는 ‘생존의 뇌’다.

미국의 심리상담가 조레인 존스 박사는 “갈등 상황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상처받으면

가장자리계가 활성화하고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다”며 “이때 논쟁의 합리화를 가장자리계가

주도하므로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자리계의 영역인 무의식 속에는 의식의 영역에 남겨 놓으면 살아가는 데 힘든

요소들이 억압돼 있다. 이런 요소들은 주로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데

부모에 의해 자극받으면 억압받았던 요소들이 변형돼 의식의 세계로 올라오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하기 십상이다. 명절에 온 가족이 두루 모인 장소는 경험을 공유한

여러 사람의 무의식이 함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사소한 말에도 갈등이 생길 소지가

커진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원장은 “사회생활에서는 남의 무의식에 상처를 주면 반격을

받으므로 많은 사람이 조심하지만 가족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내 편’이라고 믿고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다 표현해도 된다고 착각해 상대방의 무의식을 건드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모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약해지고 호르몬 체계가 변해 상처받기

쉬워진다.

양 원장은 “특히 부부의 정신세계 속에는 각자의 부모를 포함해 최소 6명의 정신이

꿈틀댈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서로 갈등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가족이 모이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가족도 남이라고 인정해 상처받을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가족의 말에 울컥 하면 ‘아, 내 무의식이 상처를 받았구나’라고

여기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만 해도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서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화가 난다면 대부분 무의식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자신이 지금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에 대해 과거 어떤 경험을

했는지 돌이켜보는 것도 좋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하다면 과거 친정어머니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친정어머니가 강압적이거나 갈등의 뿌리였다면

시어머니와 생기는 현실적인 갈등이 무의식에 의해 그 이상으로 증폭된다. 이런 사실을

깨닫기만 해도 무의식이 편안해져 갈등의 소지가 줄어든다.

명절에는 스트레스 탓에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 피로하거나 환경이 바뀌면

가장자리계가 과잉활성화해 작은 일에도 흥분할 수 있다. 따라서 오랜 시간 운전을

하고 피로를 느낀다면 가급적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란에는 끼지 않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 좋다.

인격 경향과 갈등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 아는 것도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무던히 지내지만 어떤 사람은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는 인격 경향에 따른 차이일 수 있다.

인격 경향은 성격의 여러 가지 측면 중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것이다. 정도가

심해 사회, 직장, 학교 등에서 남의 생활에 불편을 주면 인격장애. 이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의 인격 경향이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격장애가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이 경우 자신과 상대방의 인격 경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갈등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요즘 자녀 중에는 △자기애적 인격 △경계선 인격 △의존적 인격 등의 경향 또는

장애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애적 인격 경향’이 있으면

자신에 대한 사소한 비난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경계선 인격’은 남이나 자신에 대한 평가, 기분 등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으로

특히 여성은 남에 대해 편을 나누고 갈등을 조장하곤 한다.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면서

동서를 욕하거나 시부모가 가족 중 누군가를 욕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 해당된다.

의존적 인격 경향이 있는 아들은 부모에게 의존해 있다가 결혼 뒤에는 아내에게 의존한다.

명절 때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경우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부모의 독특한 인격 유형도 명절 때 충돌의 원인이 된다. 시어머니 중 일부는

수동 공격형 경향을 띠는데 이는 40대 이후 심리적으로 독립되면서 나타난다. 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다. 의학계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 고개는 바짝 숙이고 다리로는 페달을 힘차게 밟는 것에 비유해서

‘자전거로 언덕오르는 유형’(Up-Hill Bike)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유형의 성격은 마음 약한 남편에게 독살스럽게 굴고 모처럼 만난 자식들도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 가족 갈등을 일으킨다. 시부모 중에는 강박 유형을 가진 사람도

많은데 차례상 준비부터 상차리기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하거나 관리해야 편하다.

며느리들을 고생시키지 않아 좋을 듯하지만 당사자들은 심한 불편감을 느낀다.

자기애적 인격인 며느리와 수동 공격형 인격인 시어머니는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그런데 아들이 의존적이라면 해결이 어렵다. 이처럼 인격이 충돌할 때에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격 유형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만 해도 갈등이

크게 줄어든다.

■인격장애 체크리스트

A:자기애성 인격

①자신의 성취, 능력 등을 과도하게 믿는다.

②비현실적인 성공, 권력, 미, 이상적 사랑과 같은 생각에 몰두한다.

③자신의 문제는 특별해서 특별히 높은 지위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④과도한 칭찬을 요구한다.

⑤자신이 특별한 자격이 있어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하고 남들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기대에 순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⑥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⑦다른 사람의 느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⑧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믿는다.

⑨남들이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얘기한다.

 

B:경계선 인격

①버림받는다는 생각 또는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한다.

②남을 극단적으로 이상화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을 반복한다.

③자신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이 불안정하다.

④부주위한 운전이나 과소비 도둑질 과식 등 자신에게 해로운 버릇이 2개 이상

있다.

⑤자살 시도나 제스처 위협, 자해행동을 한다.

⑥수시로 공허한 느낌이 든다.

⑦기분이 들떴다가 가라앉는 등 불안정해지고 불안하다.

⑧자주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해 불편하다.

⑨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심한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C:의존적 인격

①타인의 과도한 충고 없이는 일상의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②자신의 생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타인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③지지와 칭찬을 잃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 의견이 달라도 표현하기 어렵다.

④자신감이 없어 계획을 시작하기 어렵거나 스스로 일을 하기가 힘들다.

⑤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타인의 돌봄과 지지를 원해서 기꺼이 하곤 한다.

⑥혼자서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심한 공포 때문에 불편함과 절망감을 느낀다.

⑦누군가와의 친밀한 관계가 끝나면 자신을 돌봐주고 지지해 줄 다른 사람을 시급히

찾는다.

⑧혼자 남는 것에 대한 공포에 비현실적으로 집착한다.

* A, B, C 모두 5개 이상이면 인격장애, 2∼4개이면 인격경향일 가능성이 큼.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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