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의 의사집단

빈 배의 정신을 배울 순 없을까

과연 그럴까? 어느 전문지의

보도대로 의사들의 8월 31일 ‘집단 휴진 투쟁’이 정부에 강한 메시지를 주었을까. 과연 그럴까? 한 라디오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성분명

처방’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거부감을 보이고 있을까. 과연, 과연 그럴까?

지금 의사 사회는 존망(存亡)의 기로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비난받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이 무관심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현재의 주요한 이슈에 대해 의사집단 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인터넷의 여론은 금요일의 집단 휴진이나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의 입법화 같은 주요한 문제보다 토요일 한 방송에 난 ‘정신병원 환자

감금’ 실태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다. 네티즌들은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도록 동의한 정신과 의사들에 대해 집중성토하며 의사 사회에 대해

분노를 확대했다. 이 문제도 중요한 이슈이겠지만, 이 못지않게 주요한 의제인 성분명 처방, 의료분쟁 등의 문제는 여론의 관심

밖이었다.

의사들은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이 상궤(常軌)를 벗어났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성분명 처방이나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은 미국이었으면 매일 신문의 1면 톱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필자가 미국에 연수를 갔던 2004년 미국

메릴랜드 주가 ‘의료사고 법안’을 수정하려 하자 워싱턴포스트와 볼티모어선 등 유력지는 거의 매일 1면 톱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또 성분명

처방은 온 국민의 건강권과 관련한 주요한 의제이지만 주요 언론조차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성분명 처방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의 유효성이나 약품원료확보 및 제조공정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분명 처방을 실시하면 국민을

사지(死地)로 몰 가능성이 크다. 또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의 큰 흐름에는 찬성하지만, 의료분쟁 조정과 의사 책임보험 가입을 위한 국가기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 역시 ‘개혁을 위한 개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의사들의 투쟁’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 여론은 의사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 ‘비정한 현실’이다. 의사는 서운할지

몰라도 모든 투쟁에는 경제적 이유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현실세계의 법칙이다. 그것을 부정하고 고고한 것만 외치면

위선적 이미지만 쌓일 따름이다.

게다가 의사들은 ‘의약분업 투쟁’ 과정에서 정부를 압박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국민에게 ‘이익을 위해 환자를 버린 집단’이란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줬고 단시간에 이 이미지를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의사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앞서 언급한

‘정신보건법’의 예를 든다면 국민 전체를 위해 일부 의사의 권익을 제한하는 조치를 의사사회에서 먼저 제안해야 하며, 의사 망신시키는 의사는

하루빨리 도태시켜야 한다. 자신의 손톱을 뽑으면 온몸이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모든 의사가 잘 살기’ 위해 투쟁한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 피해망상적인 언론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런 언론관은 참여정부 인사들로 족하다. 필자가 만나는 많은

의사나 의료전문지에 나타난 의협 지도부의 견해를 종합하면 언론에서 의료인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절대 그렇지 않다. 도대체 언론이 의료계를 싫어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언론은 독자층과 광고주를 확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의사집단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주류 언론이 이런 ‘손님’을 왜 일부러 홀대한단 말인가? 언론인 출신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의사집단의 폐쇄성이

언론의 구애를 떨쳐내는 측면이 더 크다.

셋째, 적군을 만들지 말고 우군을 만들라. 21세기는 공개와 공유, 참여, 제휴의

시대다. 정부도, 약사도, 간호사도 언제 제휴 파트너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의사사회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전혀 없다.  의사들은 폐쇄적인

마인드로 기존의 우군도 적군으로 만들고, 대신 자신들의 결집력에만 신경을 쓰는 듯해 안쓰럽다.

주위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약승강유승강(弱勝强柔勝剛)의 정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물이 불을 이기고 여성이 남성을 이긴다. 현실 세계에서 약한 사람만이 강한 것에

집착한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의사들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도 ‘의사 죽이기’로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사회 아닌가? 그러나 참여정부와 의사들은 잘못을 인정하는데 지극히 인색하다.

도와주려는 우군도 어쩔수 없이 짐을 싸게 마련이다.

필자가 여러 번 주장했지만, 대한민국 의사사회의 위기는 정부의 부당한 공격

때문도, 의사가 무슨 특별한 잘못을 해서도, 수익이 격감해서도 아니다. 의사라는 고마운 존재에 대해 환자들이 진정 고마워하지 않는 ‘신뢰의

위기’야 말로 가장 큰 위기다. 여론의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그 모습이 가장 큰 위기다. 의사집단에서는 그 이미지를 정부나 언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의사 스스로가 만들었지 않은가 반문해볼 필요도 있다.

버려야 한다. 작은 것은 버려야 산다. 일부러 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의사협회는 일부 의사들이 반발을 해도 큰 뜻을 위해 그 반발에 눈을 감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다. 진정 강한 자는 고개를 숙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전술적인 패배를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지금 의사집단의 모습은 너무나도 유약해 보인다. 빈 배는 가장

많은 것을 담는 배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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