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손님이 본 한국의료

“도를 넘어선 상업적 의료행위”

미국에서 손님이 왔다. 미국 동부의 교육계와 의료계에 잘 알려진 의료사회학

전공의 K박사다. 의학과는 거리가 먼 C교수(50·여)도 저녁을 함께 하게 됐다.

교수는

일전에 필자에게 “아들이 출산 때 의료사고를 당해 지금 20세이지만 4세 지능을

갖고 있는데,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이 미국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미국병원을

알아봐줄 수 없냐고 문의했다.

“글쎄요, 금시초문입니다. 뇌는 한번 손상되면

쉽게 치유될 수 없는데…. 미국 의료계의 지인이 방한 중인데 한번 만나보시죠.”

그렇게 해서 이뤄진 자리다.

저녁 식사에 들어가자마자 C교수는 국내의 의료인에게

뇌수술 얘기를 들었다며 도움을 청했지만, K박사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치료법이

나왔으면 세계가 떠들썩하지 않았겠습니까만, 질병 정복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대신 재활치료를 통해 4세 지능으로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죠.”

C교수는

낙담한 표정이었다. C교수는 기분을 돌리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 중에 필자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이 나왔다. C교수는 자신이 잘 아는 대학병원 출신의

H원장에게 어머니를 보내야 하는지 문의를 했는데, 기겁을 할 내용이었다.

H원장은

혈액을 빼서 정화해서 다시 넣는 치료법으로 온갖 성인병을 고친다면서 어머님을

모셔오라고 했다고 한다. C교수 자신도 요즘 살이 불고 피로가 심해져 ‘혈액 정화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H원장은 각종 학회에서도 큰 활동을 한 지명도가 높은

의사로, C교수는 언론사 간부들을 통해 그를 소개받았다.

“한국 의료계의

상업성이 도를 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고

있습니다.” K박사는 나중에 필자에게 탄식을 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의료인들의

행태에 실망을 하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태반주사 치료, 키 수술, 키 클리닉, 과잉 임플란트 시술, 검증되지 않은 척추

치료….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의료시스템이 엉망이어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면서 외국 환자들을 유치하려고 발버둥인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괜히

죄인이 된 듯했다. 조심스레 “그래도 미국은 의사들의 수익이 높지 않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가 오히려 면박을 받았다.

제가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들을 비롯해서

미국 동부 의사들과 많은 교분을 갖고 있는데 골프 치는 의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나 돈 중 적어도 하나는 여유가 없습니다. 대신 연수 온 한국 의사들은 10명이면

9명은 골프를 칩니다. 이것이 무엇을 반증하는 것입니까.”

미국 연수 때 골프를 배운 필자는 뜨끔해졌다. 입 다물고 그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 의사의 연봉이 많다고 하지만 세금을 떼면 연봉 1억원 이상을

집에 갖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소득 대비 의사 수익은 한국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의사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물론 의사들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의료의 공익성을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의료의 상업주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환자들도 외형적인 것을 쫓고 있다.

또 많은 의사들이 늘

참의사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건강

의료 포털 ‘코메디닷컴’블로그에 올린 서울대병원 외과 노동영 교수의 ‘좋은 의사,

좋은 환자’라는 글을 보면 우리나라 의사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의사는 기자나 교육자와 마찬가지로 돈보다는 소명 의식에 따라 살아야 하며, 그것이

채워지지 못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그래셤의 법칙’이 우리 의료계에 확산되고 있지는 않은지,

의료인들은 더 늦기 전에 자성(自省)해야 한다. 자정(自淨)할 것은 자정해야 한다.

마침 한의사협회장이 자정을 선언하고 나섰다. 의사협회장과 치과의사협회장 등도

더욱 적극적으로 자정에 나서리라고 믿는다.

의료인이 자기 뼈를 깎으며

힘들게 환자를 위한 길에 나서지 않고, 눈앞의 편한 길을 추구하면 결국 비수(匕首)는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의료인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민심(民心)은 의료인이 자기반성

없이 정부와 시스템을 비판할 때마다 매서운 반응을 보일 것이다.

미국에서

온 K박사가 떠난 뒤, 동쪽 하늘을 보며 우리 의료의 앞날에 대해 상심에 젖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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