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반주사는 만병통치약?

의사協 “효과-안전성 검증 안돼”

간염 환자 최 모 씨(56.제주도 제주시)는 올해 증세가 크게 악화돼 피로, 고열과 싸우고 있다. ‘특효약’이라는 말에 솔깃해, 치료약을 끊고 1주일에 한 번씩 태반주사만 맞은 것이 화근이었다.

주부 송 모씨(47)는 얼굴에 여드름이 심해 2주 동안 매주 3번씩 태반주사를 맞았다. 처음에는 여드름이 조금 사라지는 듯했지만 3개월째부터 이전보다 더 악화됐다. 또다시 주사를 맞았지만 증세가 더 심해져 결국 피부과를 찾아야만 했다.

피부에 좋다, 정력에 좋다, 머리카락이 나고 술이 세어진다, 아토피 피부염, 간염, 생리통, 만성피로 등 난치병이 낫는다며 태반주사를 맞는 사람이 늘고 있다. 태반주사가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면서 요즘은 병원에서뿐 아니라 집에서 ‘보약’ 삼아 태반주사를 맞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통의학에서 태반주사를 치료법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의대 교수들은 태반주사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태반주사제의 효능이 세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와 관련 없이 치료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의사들은 매년 연수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기면 행정처분을 받는데, 태반과 관련한 것은 연수교육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k대학병원에서는 최근 특정 회사의 태반주사를 처방약으로 등록하려다 교수들의 반발로 마지막 단계에서 취소됐다. 교수들은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수익이 된다는 이유로 환자에게 처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태반주사는 1990년대 중반 일본 출신 의사들을 통해 국내 소개됐으며, 한 대에 1만5000~5만원 씩 하는 주사제가 수익이 된다는 이유로 일부 개원 의사와 한의사들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그러나 태반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도 ‘확산의 속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태반의약품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것은 과장됐다. 과학적 검증 없이 일부 경험만으로 효능이 있는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배성조 전 한국태반의료연구회 회장)

“태반 치료의 효과는 누가 보기에도 거부감이 들 정도로 많다. 태반의 효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만병통치약처럼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함선애 전 대한태반임상연구학회 회장)
 


반면 태반주사의 효과를 주장하는 측의 목소리도 강경하다.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센터 이영진 교수는 “태반의약품은 3가지 효과만 허가받았지만 태반의 특성, 일본의 임상시험 경험 등을 봤을 때 허가받은 이외의 효과를 표방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며 “몸의 회복을 돕기 때문에 태반치료를 보약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약업계에서도 병의원에서 태반의약품의 허가사항 이외의 효능을 표방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태반의약품은 허가사항 외에도 다양한 효과가 있다. 효과가 없다면 국민들이 왜 맞겠는가. 임상적으로 효과를 확인하기 전에 입소문으로 유행이 생겼다”

(녹십자 마케팅팀 김상현 부장)

“주위의 권유로 태반주사를 맞았는데 정말 효과를 보고 있다. 과로와 과음 때문에 늘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태반주사를 맞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피로가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배 모씨.47)
 

이에 대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한광협 교수는 “일본에서는 임상시험의 기준이 허술하고 황당한 약의 허가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가 나기 전에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피부가 탱탱해진다고 느끼는 것은 일부 아미노산의 보습작용 때문에 피부가 일시적으로 붓기 때문이며 숙취와 피로 해소는 링거 주사를 맞거나 운동, 목욕을 할 때보다 더 낫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태반 의약품은 아미노산 제제이지만 허가받은 효과에 따르면 갱년기 증상개선 등 호르몬제제와 비슷한 효능을 보이기 때문에 향후 암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심경원 교수는 “태반 치료의 부작용이 미래에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다”며 “여성은 유방암과 자궁근종, 남성은 전립선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함선회 전 회장도 “일본에서 태반주사로 인한 쇼크가 4건 보고됐다”며 “사람에 따라 태반 주사를 맞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급성인 알레르기 쇼크가 오면 투여를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 태반 원료의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가톨릭대의대 성모병원 최환석 교수는 “정부가 태반 의약품의 원료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 지 의문”이라며 “태반이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근거를 대보라고 하면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현재 유통되는 태반의 상당수는 건강한 태반인지도 모른 채 환자들에게 제공되고 있으며, 영세업체나 중국에서 만든 것 중 상당수가 불법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30여개 제약사가 50여 개 의약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시장규모는 합법 유통되는 것만 200억~250억원으로 추산된다.

최 교수는 “일본에서는 에이즈 환자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태·반을 수입한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빚어진 적도 있다”며 “안전성을 100% 담보하지 않은 약에 대해 허가를 내준 식약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권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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