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패션은 화장? 유혹?

눈부신 ‘11’자 다리의 끝까지 올라간 미니스커트, 등이 거의 다 드러나는 웃옷, 속옷을 응용한 란제리룩, 끈만 달린 민소매 셔츠…. 올해는 이같은

예년의 노출패션에다 다양한 소재로 촉감을 강조한 원피스드레스가 유행이다. 길이는 강동하고 민소매에 속이 비치거나 등이 파인 것 등 자극적으로 노출을 강조하고 있다.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노출패션이 유행이다. 미니스커트는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을 따라 미국에 갔던 가수 윤복희가 1967년 김포공항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한동안 ‘폭탄’이었고 한때 정부의 단속대상이었지만 지금 누가 초미니스커트를 입는다고 대놓고 시비를 걸 사람은 없다.

알몸에

수건을 얹어놓은 듯한 원피스드레스를 입고다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부 남성들은 속으로는 ‘고마울 따름’이라고 여길지라도 여자친구나 딸은 이런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인다.

▽노출은 자기만족?=왜 젊은 여성은 노출을 즐기는 것일까. 각종 설문 결과 ‘자기애의 표현’이라는 답이 월등히 많다.

자기만족을 위해 아슬아슬한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노출은 화장(化粧)의 일종이며 남성의 병적인 ‘노출 도착증’과는 다르다는 해석이다. 노출 도착증은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남에게 보여주며 쾌감을 느끼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특히 미니스커트와 관련, 숙명여대 의류학과 채금석 교수는 “히프에 포인트가 주어져 넓적다리에 시선이 집중되게 한다. 이 경우 굵은 다리를 시각적으로 길어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자신에 대해 착각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행복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디지아니 앙드레 쿠레주의 “다리를 길게 늘리자”는 슬로건이 맞는 셈이다.

그러나 일부 정신의학자들은 “이런 해석은 무의식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면서 “여성의 노출도 남성의 노출 도착증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즉 열등감이 많은 남성이 모르는 여성에게 성기를 보여주고 여성이 난처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듯, 여성도 노출을 통해 남성의 시선을 끌 때 자신의 여성성을 확인하고 안심한다는 것이다.

최영 정신과 원장(전 전남대 교수)은 “여성의 노출 심리는 남성의 노출 도착증과는 격이 다르지만 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선녀와 나무꾼 심리’로 표현했다. 선녀(여성)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목욕(노출)한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남성(나무꾼)의 엿보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性) 전략으로서의 노출=노출은 종존 번식을 위한 자연계의 당연한 법칙이라는 것이 진화생물학자들의 설명이다.

모든 동물은 종족 번식을 위해 다른 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하며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 중 일부는 대부분의 동물은 수컷이 암컷보다 화려하지만 인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의 관심을 끄는 데 더 적극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류인균 교수는 “남녀 모두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권력, 재산, 학력 등 보여줄 것이 많지만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였던 여성은 섹시한 몸매가 남성의 시선을 끌기 위한 좋은 방편일 뿐이었다는 것. 여성은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출을 비롯한 ‘꾸미기’에 열중한다.

이상적 남성이 많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회사의 직원보다 더 꾸민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아무튼 유난히 화장을 짙게 하거나 아슬아슬한 옷을 선호하는 사람은 남의 시선을 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또 상당수는 TV 스타의 옷차림이나 유행을 따라함으로써 그들과 자신을 동일화하는 방법으로 자존감을 충족시킨다.

일부 정신의학자들은 자기애적, 히스테리적, 경계선 인격장애가 있는 여성이 외모를 특히 중시하고 화장, 노출 패션에 집착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여성은 자아가 불안정하고 그러자니 이를 벌충하기 위해 남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맹목적 유행 따르기는 한국적 현상=경기와 미니스커트의 유행이 관련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진화생물학자들도 동물들은 생존여건이 어려울수록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의 경제학자 마브리는 “1960년대 호경기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했고 오일쇼크가 몰아친 1970년대에는 롱 스커트가 유행이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한국에선 70년대 경제성장기 뿐 아니라 IMF 경제위기 때에도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일부 문화인류학자들은 “유행의 패턴은 사전에 디자이너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경기와 관련짓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반론을 편다.

패션은 일종의 대중 조작이며 특히 한국은 유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커서 몸매가 안 따라 줘도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결국 입게 된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전쟁과 독재 등의 역사적 체험을 거치면서 ‘중간만 가면 된다’ ‘남들 하는 대로 하라’는 ‘생존법칙’이 무의식에 내재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에서는 주목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유행이라면 노출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 여성이 유행에 민감하고 화장이 짙은 것은 한국 사회가 경쟁적, 역동적이어서 주목의 필요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모가 키나 옷맵시 등 외모를 강조하거나 어머니가 자녀들 앞에서 수시로 화장하는 경우 자녀들도 외모에 더 신경을 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일부 문화비평가는 부모에 대한 반감이 강한 아이가 권위를 부정하는 수단으로 노출을 즐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노출 패션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수십 가지이다. 전문가들은 한 가지 이론만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이 아슬아슬한 옷을 즐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노출은 범죄를 유발?▼

D회사의 정 모 부장(44·여)은 일을 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민망함에 고개를 획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사원의 못 볼 것을 본 것. 그 사원은 바지를 엉덩이에 걸쳐 입는 이른바 골반바지를 입었는데 허리가 모두 노출된 것은 물론 분홍색 팬티의 윗부분도 모두 드러나 보인 것. 이처럼 여성 사이에서도 직장동료의 지나친 노출이 불쾌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남성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부류와 ‘세상이 망조니까, 참…’이라는 두 가지 부류도 구분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여성의 노출 패션을 비난할 뚜렷한 근거는 없다.

일부 남성은 “여성의 노출이 성범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펄쩍 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홈페이지의 ‘성폭력 편견 바로잡기’에서 “노출이 심한 여름에 성폭력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계절과 상관없이 성폭력은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이 아무리 짧은 반바지와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성적인 대상이나 성폭력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아프리카에서는 가슴을 노출하거나 거의 옷을 벗고 다녀도 강간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이 강간을 유발한다는 것은 우리 문화가 만들어낸 통념”이라고 주장한다.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윤세창 교수도 “성폭력은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폭력성향 중 하나로 피해자에 의해 유발된 성적 충동보다 행위자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공격성 또는 힘의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죄는 아니지만…”

성폭력상담소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성범죄의 원인을 여성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점과 실제 여성의 노출 패션이 성범죄를 유발하는데 조금이라도 관여하느냐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여성계에서는 이를 같은 차원에서 본다는 것.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남성에게 책임이 있지만 성폭력을 하고자 하는 남성에 핑계거리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에서는 많은 남성이 이중인격을 갖고 있으며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여성을 손쉬운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출이 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 BBC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기업들이 직원의 과다노출을 방치해 직장 안에서 성희롱, 성폭력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법원에서 이를 막지 못한 기업주에 책임을 묻기 때문에 기업들이 복장 규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때와 장소는 문제다

노출이 심해도 수영장이나 대낮의 거리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요인과 겹쳐졌을 때 발생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귀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성범죄 여부와 관계없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옷을 가려 입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라는 금언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엿보기-노출 도착증 "정신과치료 받아야"▼

노출 패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엿보기 경향’과 ‘노출 도착증’이며 둘 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엿보기 경향=관음적(觀淫的) 경향이라고도 한다. 남의 은밀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일종의 관찰본능. 진화 과정에서 억누르고 감춰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 이런 경향이 지나쳐 자신이나 남의 생활을 방해할 정도이면 ‘관음 도착증’에 해당되며 특히 남성에게 많다.

정신과에서는 6개월 이상 △남이 옷을 벗는 모습이나 벗은 몸, 성행위 장면을 보고 싶어 하거나 △비난을 무릅쓰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남의 침실을 엿보는 행동을 하면 관음 도착증으로 규정한다.

▽노출 도착증=일명 ‘바바리 맨’ 정신병. 자신의 성기를 남에게 보여주며 쾌감을 얻는 행위를 반복하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두세 살배기 젖먹이가 남에게 성기를 보여주면서 만족하는 것과 같은 심리상태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성행위를 캠코더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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