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를 보면 왜 춥나

디센트, 샴, 해부학교실, 기담….

스릴러 영화광인 주부 김성희 씨(41)는 올 여름 개봉할 공포영화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살갗이 오돌오돌 돋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영화에서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소리를 지르면서, 옆 사람이 있으면 껴안으면서 즐긴다. 모르는 사람을 껴안았다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김씨는 궁금하다. 정말 공포영화를 보면 추워질까. TV에서 납량(納凉) 특집으로 공포영화를 방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까. 납량의 뜻이 ‘여름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바람을 쐬는 것’이고 우리말로는 ‘서늘맞이’라는데….


회사원 윤태경 씨(42)는 서울 서대문 로터리에 들어설 때나 전설적 록 그룹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 스피커에서 나오면 왠지 모를 공포감에 몸서리쳐진다. 윤 씨는 2001년 겨울 살얼음이 낀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미끌어져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았다. 그에게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교차로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모든 것이 움직였다. 핸들은 말을 듣지 않고 차는 빙빙 돌고 오른쪽에 빛이 번쩍 보였다. 인도에서 소리치는 사람, 건물의 간판 등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꽝’. 정신을 잃었다.


진화론적으로 공포는 위험에 대한 몸의 경계태세다. 그러나 사람마다 공포의 색깔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공포감을 떨칠 수 없어 괴로워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돈 없이 더위를 쫓기에는 공포영화가 최고”라며 공포감 자체를 즐긴다. 공포영화의 시즌을 맞아 공포의 실체에 대해 알아본다.

Q:공포는 왜 느끼나?


A:공포는 자기보호 본능이며 모든 감정 중 가장 근원적이고 지속적이다. 그래서 뇌 과학의 주된 관심 분야다. 사람은 뱀, 거미, 높은 곳 등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무섭게 여겨 이를 피하도록 진화해왔다. 이런 것들이 현재 사람을 더 많이 해치지만 사람들이 별로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 전기보다 더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공포감은 ‘역사의 산물’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Q:귀신영화를 보며 몸서리치는 것도 자기보호 본능과 관련이 있나.

A:영화를 볼 때 관객은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 귀신이 피해자에게 해코지를 할 때 관객은 자신이 해를 당하는 걸로 여겨 자기보호 본능에서 몸서리를 치게 된다.


Q:공포영화를 보면 정말 추워지나.

A:그럴 가능성이 크다. 공포감을 느낄 때에는 교감신경이 흥분하며 땀샘이 자극돼 식은땀이 난다. 또 보온하기 위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말이 맞다. 또 털 세우는 근육이 수축되면서 소름이 돋는다. 일반적으로 공포물을 볼 때 체온은 약간 더 올라가 외부 온도를 차게 느낀다.

 

Q:공포영화는 사람을 더 떨게 하기 위해 음향에 특히 신경 쓴다는데….

A:맞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시각정보보다 눈에 안 보이는 청각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화 제작자는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심장 박동수보다 약간 빠를 때까지 소리의 박자를 조금씩 빨리 변화시킨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를 줄였다가 끔찍한 장면에 소리를 ‘꽝’ 내보내 놀라게 한다.

Q:기억을 못하는 사람도 특정한 것에 대한 공포감은 느낄 수 있나.

A:있다. 약 100년 전 스위스의 정신분석가 에두아르 클라파레데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몇 분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성 환자를 치료했다. 환자는 매일 의사를 몰라봤고 클라파레데는 환자에게 매일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사가 손바닥에 핀을 감춘 채 악수를 하고 다음날 다시 자신을 소개한 뒤 악수를 하려고 하자 환자는 질겁하고 피했다. 무의식적, 감정적 기억 저장 시스템이 따로 있는 것이다. 뇌의 편도체가 이러한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정보 처리의 핵심 장소다.

Q:지나친 공포감도 병이라고 할 수 있나.

A:사람을 만나고 발표를 하는 것 등을 두려워하는 ‘사회공포증’과 특정 장소, 높은 곳, 뱀, 쥐 등 특수대상을 무서워하는 ‘특정 공포증’이 있는데 심하면 치료받아야 한다. 둘 다 두려운 대상에 직접 부딪치는 행동요법으로 고치며 심할 경우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 심장이 ‘쿵쿵쿵’ 뛰며 잘 놀라는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도 일종의 공포증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병은 ‘위험-경고-반응’ 시스템이 고장 나서 사소한 자극에도 자율신경계가 흥분하는 병이다. 약물요법, 상담, 행동요법 등으로 고친다. 사고나 충격 등을 겪은 뒤 잘 놀라고 우울해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도 공포감과 관련이 있으며 이 역시 상담, 행동요법, 약물요법 등으로 치료한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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