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사회 의사 마인드

고혈압 환자 A씨. 승용차를 몰고 거래처로 가다가 길가에 차를 세운다. 가슴을

누르는 극심한 통증 때문. 휴대전화부터 찾는다. 119 구급차를 부르고 휴대전화의

병원 정보 검색 서비스를 통해 인근병원 중 소비자 평점이 높은 곳을 찾는다. 구급차가

오자마자 S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부탁한다. 응급실에서는 A씨의 팔뚝에 심어진 RFID

카드를 읽고 곧바로 심장수술에 들어가고….

멀지 않은 장래에 이 땅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광경이다. IT 및 컴퓨터공학과 바이오공학,

의료공학의 만남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료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빌

게이츠가 “IT의 다음 투자개발 영역은 의료계”라고 단언한 대로 온갖 기술이 착착

의료계로 들어올 것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평생건강관리, 원격의료, 호환성

전자의무기록(EHR), 위치 기반 의료정보(LBS), 로봇을 이용한 문진 간소화 등이 속속

의료계에 선을 보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IT산업을 비롯한 미래 산업의 승패는 오픈 마인드와 제휴 가능성에

달려 있다. 올해 CES의 중심 화두는 연결성(Connectivity)이었다. 이 연결성은 기술의

연결이자 마인드의 연결이다.

현재 인터넷 세상의 화두는 오픈 마인드를 통한 연결이다. 이미 구글(Google)의

성공에서 입증됐지 않은가? 구글은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세계 각국의 항공지도를

누구나 공짜로 쓰게 한다. 일본에선 이 항공지도를 통해 병원 정보를 검색하는 사이트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구글은 대신 이 사이트의 클릭 정보를 분석해서 지식을 재생산하고

광고에 이용한다.  

하지만 의료계의 누구도 연결과 개방, 공유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더욱

더 문을 닫고 폐쇄의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최근 의사단체가 하는 일들을 보면 “저 분들이 과연 21세기 초의 지식인이 맞나”하는

의문이 절로 뒤따른다. 의료법개정안 투쟁과 이 과정에서의 정치권 로비, 보건교사의

의약품 투여 문제 제기 등 하는 일마다 역풍(逆風)을 맞으면서도 “억울하다”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 투쟁과 정치권 로비는 차치하자. 서울시의사회의 교내 의약품 투여

행위에 대한 검토 요청을 보자. 서울시의사회는 보건교사들의 의약품 투여가 너무

포괄적이라고 삭제를 요청했다고 하소연하지만 누구도 호응하지 않는다.

의사회 임원은 “법률적 모순을 발견해 이를 검토해달라고 의뢰한 것인데 의사들

요구라면 일단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가는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심경을 토로했는데,

필자가 안타까운 것은 의사회의 아마추어리즘이다.

법률적 모순이 실제로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정말 문제가

된다면 거기에 초점을 맞춰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프로다운 행위다. 이 과정에서

의사 사회 밖의 누구에게 의견을 구했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아마추어리즘은 우리나라

학교보건 영역의 척추측만증 과잉진료 등 진정 문제를 삼아야 할 부분에 대해 비판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만다.  

미래의 의료 환경은 지금의 의료시장보다 몇 십 배 커질 것이라는 것이 IT업계의

중론이다. 고개를 들고 멀리 보라. 조금만 현실에서 떨어져 객관적으로 의료시장을

보면 양보를 통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가정간호를 적극적으로 하도록 도와주고, 대신 이를 관리하고

묶는 시스템의 주인이 되는 것. 보완의학이 제도권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대신 효과를

철저히 검증하고 통합 관리하는 것. 정부가 추구하는 의료전산화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 시스템의 주인공이 되는 것…. 이것은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며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의 외연을 넓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의료계가 정부가 추구하는 의료산업선진화 전략도 정보사회의

토대가 되는 공유와 공익의 정신을 담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의사들이 현실도 모르면서 이상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묶여 있으면 현실을 보지 못한다. 숱한 의사들과 매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21세기 정보사회의 키워드인 개방, 공유, 제휴, 공익 등은 원래 의사 세계의 기본적인

마인드이기도 했다. 지금부터라도 우군(友軍)을 계속 만들고, 미래 정신으로 의사의

외연(外延)을 넓혀나가기를 빈다.

다행히 인터넷의 악의적 댓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일부 누리꾼 외에 많은

국민은 아직 의사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의사의 고마움을

뼈속 깊이 절감하고 있다.

이들은 의사 사회가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이고 보다 넓어진다면 기꺼이 우군이

될 것이다. 이들과 함께 미래 의료를 개척한다면 의사들이 생로병사가 담기는 거대한

온-오프라인 의료시스템의 고갱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방과 공유, 공익 추구를

통해 세계 의료 시스템의 허브가 될 수도 있다.

실마리만 주어진다면, 그래서 물길만 트인다면 한국의 의사들은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실마리는 의사 사회의 새 리더가 풀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政治人)이나 중우(衆愚)가 아니라 현자(賢者)인 리더가 의료계의 여론을 이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거시적으로 의사사회는 자신을 닫고 온갖 집단과 싸우느냐, 아니면 열고 주고받느냐의

기로에 있다. 또 과거에 묶이느냐, 미래로 나아가느냐 갈림길에 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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