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많을수록 최고?

최근 A신문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6년 수술 건수’ 통계를

특종보도하자 다른 신문들도 이 보도에 가세했다. 평소 이 신문이 시도하는

새로운 형식의 심층보도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지만, 이 보도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A신문은 첫날 ‘6대 암의 수술 순위’를 1면과 4, 5면에 걸쳐 비중

있게 보도하고 다음날에는 백내장과 치질, 3일째에는 인공관절 수술

등에 대한 병원 순위를 자세하게 게재했다.

신문은 이 자료를 단독 입수한 사실을 강조하고, 수술 건수가 많다고

반드시 좋은 병원은 아니지만 수술 경험이 쌓일수록 의사의 실력이 좋아지게

마련이라며 질환별 수술 순위를 도표로 소개했다.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의료평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단순히 수술 건수를 비교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소비자에게 바람직한 정보가 될까?

첫째, 수술은 여러 치료법 중의 하나이지 전부가 아니다. A신문 12일자

출판면에 소개했던 외과의사 강구정의 책 ‘수술, 마지막 선택’의 제목처럼

수술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시행돼야 한다. 일부 질환은 수술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근본적인 사정을 간과하고

‘수술 많이 하는 병원=좋은 병원’인 양 등수를 매기는 것은 자칫하면

과잉수술을 부추기는 우를 범하게 된다.

둘째, ‘수술을 많이 하면 의사의 실력이 좋아져 치료율이 높아진다’는

전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인들은 동일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수술 건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최소한의 기본정보는

함께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우선 ‘소비자의 수요가 많은 제품이 좋을 가능성이 크다’는 암묵적

전제가 통하려면 환자가 특정 병원을 원해서 그곳에 가는지, 아니면

현실상 특정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은지를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6대암 중 4관왕을 차지한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다 병상(2200개)과

중환자 병상(170개)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 받고 싶지만

병상이 없어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환자가 ‘차선책’으로 이 병원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병상에 대한 정보, 대기 환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허황한 수치가 될 수밖에 없다.

신문 독자들은 알기가 힘들지만, 병원의 과별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위암의 경우 조기암은 내시경적 치료나 외과수술 중 택한다. 만약 소화기내과에서

내시경 치료를 할 수가 없다면 외과의 수술 건수가 증가할 수 있다.

조기위암을 수술할 때에는 건당 입원일수는 2, 3기 암보다 적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입원일수가 줄어들어 수술 잘 하는 병원으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최근 필자는 지인으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았다. 고교생 딸이 특정

질환으로 A병원에 한 달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갑자기 수술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딸은 필자가 소개한 B병원으로 옮겨서 내과치료로

완치됐다. 내과와 외과의 특성이 무시된 수술 건수는 의료 소비자들을

기만하기 딱 좋은 자료다.

암의 경우에는 항암치료, 방사선종양내과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이런 요인들은 빼고 수술만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B신문이 지난

2월에 보도한 ‘2001~2005년 병원별 암 수술 건수’에 등장했던 의사 1인당

수술 건수가 이번 보도에서는 왜 빠졌는지도 의아하다. 단순히 의사가

많아서 수술을 많이 했는지, 명의에 환자가 몰렸는지는 병원 당 수술

건수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 외과 교수가 수술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느라 하루 수술 건수를

제한하는 경우가 일부만 집도하고 나머지는 팀에 맡기는 경우보다 순위에서

처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 경우 과연 어느 편에 점수를 매겨야 할지는

정답이 없지 않은가?

셋째, 순위를 매길 때에는 데이터가 100%에 가깝게 정확해야 한다.

주요 병원은 실적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작은 데이터 차이 때문에

등수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심평원의 자료에서는 전산으로 신고한

건수만 집계되고 서면으로 신고한 건수는 누락되는 등 데이터의 오류가

숱하게 있어 순위 자체의 신뢰성에도 금이 간 상태다.

이 기사를 취재한 A신문 기자는 ‘취재일기’에서 수술건수를 공개해야

의료계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우리 병원이 외국 병원과의 경쟁에서 이긴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가 전문신문 칼럼을 통해 줄곧 주장했듯, 의료계의 경쟁력은

의료산업화론에 따른 외형적인 확충으로는 이루기가 힘들다. 필자가

공부했던 세계 최고의 병원 존스홉킨스병원에서도 이런 식의 경쟁력을

얘기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병원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오히려 조용히

내실에 충실해야 한다. 의사 사회에서 양심에 따라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면

득이 돼서 양화가 악화를 쫓아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료인과

환자와의 신뢰성이 회복되는 등 내실을 기하면 경쟁력은 자연적으로

생긴다. 존스홉킨스도 그 길에 충실했기 때문에 세계 1위의 병원이 됐고,

그러면 환자는 자연히 몰리게 마련이다.

필자는 언론사 못지 않게 심평원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심평원은

B신문에 2001~2005년 암 수술 통계를 흘리더니 이번에는 A신문을 통해

언론플레이를 했다. 심평원은 본격적 의료기관 평가를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이런 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내보내는 듯하다.

A신문의 해설기사에서도 미국과 한국의 병원 평가 실태를 비교하고

있다. 미국의 병원들은 의료관리기구(HMO:Health Management Organization)들이

중심이 돼 만든 의료기관평가합동위원회’(JCAHO:Joint Commission on

Accreditation of Healthcare Organization)를 비롯한 의료품질 평가기관의

까다로운 실사를 받는다. 젊은 의사들은 “일을 못할 지경이다. 우리가

범죄자냐”는 하소연까지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기본이 안돼 있는 어설픈 자료를 공개해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시도는 꿈도 꾸지 않는다.

심평원의 논리대로라면 건물을 크게 짓고 의사를 많이 확보할수록

좋은 병원이 된다. 비수술적으로 치료 가능한 환자를 수술실로 보내면

좋은 병원이 된다. 암의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척추나 관절 등의 치료에서는

수술을 치료법으로 선택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또 홍보 마케팅을 많이 해서 환자를 많이 모으면 좋은 병원이 된다.

지금 우리 의료계의 문제점을 고쳐나가야 할 심평원이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을 조장하는 셈이다.

소비자에게는 비교할 수 있는 의료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정보 공개는 의료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는 큰 흐름이다.

한국 의료계도 의료정보 공개의 대세에 역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보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의료정보 공개에 앞서 먼저 어떻게 하면 정확한 정보를 모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정보를 가치 있는 것으로 가공해서 소비자의

판단을 도울 것인가 등에 대해 깊이깊이 고민해야 한다. 관련 의료계에도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의료기관평가와 의료정보공개의 진행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의료계 평가는 의료계를 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언론도 정보의 평면성이 갖는 함정에 대해 늘 유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받아쓰기 언론’, ‘경마보도 언론’이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보가 과연 내 가족을 살릴 정보인지, 오히려 해가

되는 정보인지 고민해야 한다. 만약 이번 정보를 기본으로 해서 객관성

확보 및 검증 절차를 거쳐 내보냈으면 그 동안 다른 영역에서 선보인,

새로운 탐사보도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A신문은 의사들의우려에도 불구하고 순위 발표를 계속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투성이의 정보를 믿고 병의원을 선택했다가 결정적

낭패를 보는 환자가 속출한다면 그 보상까지 이 신문에서 해줄 것인가?

언론에서 의료정보를 제공할 때에는 가족에게 알려준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언론에서 특종보다 수 천, 수 만 배 중요한 것은 독자에 대한

사랑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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