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사태와 우리사회 정신건강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놀랐다. 울가망했다. 화도 났다. 무기력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참사 소식을 접하고 옛날 기사를 검색했다. 필자가 기자 시절 쓴 망상장애 등에 대한 기사를 되씹으며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음 문장들이 하루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해망상 환자는 그냥 놔두면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이나 살인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꼭 필요하다.” “망상장애 환자는 좌절이 참을 수 없는 한계를 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가상 상황’을 설정하고 책임을 돌림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참극 다음날부터 의학적인 시각에서 이를 분석하는 기사도 줄을 이었다. 더러 수긍할 만한 것도 있었지만 기자가 전문의의 해설을 잘못 이해한 것도, 자칭 전문가가 너무 앞선 경우도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조씨의 정신상태를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규정했는데, 이는 기자의 오해에서 온 듯하다.

반사회적 행동과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다른 개념이다. 조씨가 반사회적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그를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다소 생뚱맞은 듯 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주로 깡패나 건달, 위선적 정치인, 사이비 교주 등에서 발견되며 평소 행동이 공격적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진행된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조씨는 거꾸로 달팽이 같이 조용히, 자신의 늪에 빠져 지냈다.

조씨의 어린 시절, 성장기, 최근 행적 등을 종합해 보면 반응성 애착장애가 자폐 증세로 고착화해 망상장애로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 간과하고 있지만 반응성 애착장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장애는 유아기 뇌 회로 형성기에 정서적 접촉이 부족해서 유사 자폐 증세를 보이는 것. 선진국에서는 이 병의 성격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요즘 한국사회에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데다가, 아이의 정서적 안정보다는 지능성취가 중시되는 교육 환경에서 이 질환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씨의 유아기에 ‘자폐증’이 있었다고 분석하는데 자폐증은 주로 임신기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인한 선천적 뇌 이상 때문에 생기는 기질적 질환인 반면, 반응성 애착장애는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크다. 이 질환이 꼭 어머니의 애정 부족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므로, 필자는 이 질환의 이름을 ‘정서 형성 장애’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하여튼 이 질환은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도움과 가족의 공동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방치하면 조씨와 같이 자폐적 성격으로 진행된다. 조씨의 부모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음에도,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어 아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함으로써 오히려 아들의 병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절망과 분노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동료 학생들이 지나가며 웃는 정상적인 웃음도 조씨의 세계에서는 비웃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 망상이 커지고 커졌을 것이다. 피해망상이 과대망상, 애정망상 등을 불렀고 이들 망상이 서로를 부채질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보도에서는 망상장애와 달리 편집증이 엿보인다고 풀이했는데, 두 가지는 한 가지 질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씨가 NBC에 보낸 동영상을 보면 정신분열병의 소지도 보이지만, 조씨가 영문학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징적인 표현을 했을 수도 있어 정신분열병이라고 확신할 수만은 없는 듯하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런 정신장애의 가능성에 대해 쭉 기술하고도, 조씨가 이런 정신장애와는 달리 뇌의 질환을 앓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족(蛇足)을 달아 씁쓸했다. 마음의 병과 뇌의 질환을 전혀 다른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장애 모두가 뇌의 질환이라는 것은 이른바 의학전문기자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신장애도 다른 모든 병과 다를 바 없이 우리 몸에 생기는 질환이며 특히 뇌가 아픈 병일 따름이다.

이번에 또 문제가 된 것은 누리꾼들의 정신 상태다. 누리꾼들은 처음에 용의자가 중국인으로 보도되자 전체 중국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더니, 조씨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황당한 음모론을 유통시키며 흥분했다. 심지어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 조씨의 추모비가 마련돼 있고, 여기에 조씨를 동정하는 ‘사랑의 편지들’이 쌓인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을 들어 비난했다.

필자가 존경하는 한 정신과 전문의는 이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들이 거기에 댓글을 달겠느냐. 댓글은 이런저런 이유로 누리꾼에게 쌓인 피해의식을 비정상적인 방어기제로 푸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병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책임 없는 글들을 내뱉고 욕과 비난을 통해 마음의 갈등을 푸는, 누리꾼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짚고 가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태는 사회 구성원이 정신질환을 방치했을 때 그 피해는 구성원 모두에게 올 수 있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줬다. 한국 사회에서도 독특한 민족주의에서부터 사회 전반의 피해의식, 건전하지 않은 정신의 방어기제, 반응성 애착장애, 인격장애, 망상장애 등에 관한 수많은 화두를 던졌다.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본다.

정신과 전문의들 가운데 우영섭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교수와 유범희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등이 언론을 통해 이번 사태를 적절하게 분석했지만, 여기에서 멈추기 보다는 범 정신과 차원에서 우리 모두의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정신장애를 짚고, 또 정신질환 치료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누구나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를 찾을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의 벽을 허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더 나아가 이번 사태를 정신이 건강한 것,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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