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 의료산업선진화론

Where are the snows of yester year?(지난해 내린 눈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중세 프랑스의 시인 프랑스와 비용의 시(詩)에 나오는 반복 문구다. 요즘 각종 경영 관련 책들을 읽으며 수많은 기업과 인물이 지난해 내린 눈처럼 사라졌고 또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하지만 어떤 기업은 도무지 녹을 기미가 없으며 오히려 눈 덩이처럼 세를 키우고 있다. 수많은 경영 전문가들이 일류기업, 미래선도기업의 특징으로 내놓는 것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치경영(價値經營)이다. 공익에 기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구글은 세계의 지식을 재편해 정보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목표를 차근차근 이루고 있다. 이-베이는 경매라는 방식을 통해 소비자들이 이익을 보게 하고 그 이익을 오프라인 세계의 봉사활동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애플은 PC 시대를 열어 개인이 아름다운 디자인의 IT세계를 갖도록 했으며, 아마존은 베스트셀러시대에 사라질지 모를 책들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기업의 공익적 가치는 더욱 더 중시될 것이다. 21세기 산업계는 제대로 된 가치를 구현하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치 중시의 시대’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산업선진화를 바라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최근 한 언론에 보도된 ‘해외 환자 유치, 병원이 뭉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기사에 따르면 30여 개 병의원이 해외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협의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의료산업선진화의 큰 틀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금만 깊이 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돈을 벌겠다는 분야가 건강검진, 척추수술, 성형, 치과 등의 분야다. 공통점은 한국에서 과잉 치료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분야이다. 협의회 소속 병원 중에서는 현재 상업성 때문에 지탄을 받고 있는 병원도 눈에 띈다. 상술로 외국 환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것이 의료산업 선진화란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의료산업선진화 정책은 황우석 사태의 판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 의료산업이 선진화하려면 오히려 내실에 충실해야 한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 전반에 대한 투자 없이 ‘배아줄기세포’라는 윤리적 논란이 있는 상품을 통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망상이 빚어냈다. 마찬가지로 의료전반에 대한 투자와 시스템의 개선 없이 상술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따름이다.

사실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황우석 사태의 주인공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김병준, 박병원, 박기영, 황우석, 노성일 등이 핵심 멤버였으며 싱가포르처럼 해외 환자를 유치해서 막대한 돈을 벌여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나 가능한 천민(賤民) 자본주의식 논리일 따름이다.

의료산업이 가장 선진화된 미국에서도 이런 식의 접근은 하지 않는다. 존스홉킨스와 메이요 병원 등은 해외 환자를 유치해서 병원을 키운 것이 아니라, 훌륭한 기부문화에 바탕 해서 좋은 의료기관을 만들어 외국의 환자들이 찾아온 측면이 강하다. 공익을 강화하면 수익도 생길 수 있다는 원론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들이다.

우리 의료도 인류의 공익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심장재단과 세종병원이 펼치고 있는 개발도상국 어린이 무료수술, 삼성서울병원 간이식 팀의 이집트 무료 수술, 한길안과의 무료수술 등은 좋은 사례다. 이런 봉사활동은 우리 의료계의 위상을 높이면서도 국가 이미지 제고 등 유무형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의료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예산의 몇 배를 선진적 의료시스템 구축에 돌려야 한다. 그래서 의사가 양심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하는 것을 보장하고 환자가 우리 의료시스템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의료법 개정도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시행돼야 한다. 우리 의료계가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갖춰 국민의 건강권이 보장된다면 이로서 얻는 이익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의료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

또 외화를 벌려고 굳이 얄팍한 의료산업선진화 정책을 펼 필요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한없이 열린 시대에 자연스럽게 외국의 환자가 한국으로 올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최상의 진료로 인류의 공익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고….

지금처럼 한국 의료계의 모순이 표출된 분야에서 돈을 벌겠다면 국제사회에 얄팍한 의술로 돈을 버는 국가라는 나쁜 이미지만 퍼뜨릴 수 있다. 현실적으로 국제적인 의료분쟁에 휘말리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크다.

작은 이익을 추구해서 역사에 남는 기업은 없다. 그런 것은 지난해 내린 눈처럼 사라질 따름이다.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우리 의료시스템을 선진화하고 그것으로 인류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고민하면 큰 이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것은 경영학이 가르치는 살아있는 진리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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