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2.0이 바꾸는 의료환경

‘어느 것이든 좋다’(Anything Goes)!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폴 화이어아벤트는 모든 용어를 과학용어로 바꿀 수 있다는 ‘환원형(還元型) 유물론’에 맞서 “인디언의 의학, 중국의 침술 등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이렇게 도발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은 여러 패러다임 중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선택이다. 어느 것이든 좋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지만, 오프라인에 머물며 유유자적(悠悠自適) 소요(逍遙)한다고 뭐 문제가 될 것인가. Web 1.0의 시대에 머물며 Web 2.0을 무시하며 산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하지만 새 패러다임 Web 2.0은 이미 거대한 파고(波高)로 밀려오고 있다.

요즘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의사는 웹 2.0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위키피디아 혁명이니 구글 혁명이니 하는 얘기는 금시초문(今始初聞)이고, 블로그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도 많았다.

사실 모를만도 하다. 웹 2.0은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그것이 기술을 지칭하는지 하나의 사조(思潮)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으니. 필자는 웹 2.0가 인터넷에서 나타난 획기적인 기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경향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 경향은 참여, 정보 공개 등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 흐름을 주도하는 기업은 이전의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문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

웹 2.0이라는 흐름은 IT산업의 가격혁명 때문에 가능했다.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5년 반도체는 1년 반을 주기로 성능이 두 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제창했고, 삼성전자의 황창규 박사가 “무슨 소리, 1년 만에 두 배로 향상된다”는 ‘황의 법칙’을 만든 것처럼, IT산업에서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따라가기 벅차다. 이는 역으로 디지털 제품의 급격한 가격 하락을 가능케 했다. 이에 따라 누구나 저가에 디지털 기기를 구매해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거기에다 리눅스 혁명처럼 운영시스템과 프로그램,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하는 ‘오픈 소스 흐름’이 일어났고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현하며 세상을 바꾸는 기업들이 속속 생겨났다. 이들 기업이 만드는 변화의 움직임을 묶어 웹 2.0 혁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대표적인 웹 2.0 기업은 구글이 아닐까 한다. 구글은 1998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학과의 두 대학원생 페이지와 브린이 “세계의 정보를 조직화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기치로 설립했다. 일본의 IT 평론가 우메다 모치오(梅田望夫)는 구글을 “박사 학위를 가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매일 목숨을 걸고 오퍼레이션(운영)이라는 노가다를 하는 회사”로 규정했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지식생산 공장을 인터넷의 이쪽이 아니라 ‘매트리스 세상’인 인터넷 저쪽에 구현하고 있다. 그 규모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현재 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컴퓨터만 최소 30만대로 추정된다.

이런 구글 혁명을 비롯한 웹 2.0 혁명의 기본정신은 참여와 평가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누구나 온라인에 접속해 특정 주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놀랍게도 ‘네이처’가 위키피디아와 전문가들이 수 십 년 동안 공들여 만든 브리태니커 사전을 분석했더니 둘의 신뢰도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밖에 사진 공개 사이트 플리커(Flicker)나 최근 구글에 인수된 동영상 제공 사이트 유튜브(YouTube) 등도 전형적인 웹 2.0 기업에 속한다.

이들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참여의 근저에는 ‘공개와 교류의 정신’이 깔려 있다.
구글은 인공위성으로 찍어 건물이 손바닥처럼 훤히 나오는 위치정보 프로그램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아마존에서는 누구나 아마존의 상품을 이용해서 거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e-베이도 소규모 사업 사이트를 자신의 사이트 안에서 개설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업들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Web 2.0 기업은 사용자의 참여를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켜 수익을 얻는다. 대표적인 것이 ‘긴 꼬리(Long Tail) 전략’이다.

세로를 매출액, 가로를 매출 품목으로 해서 매출액이 많은 품목부터 매출 그래프를 그린다면 왼쪽이 높다가 일정 부분에서 뚝 떨어져 낮은 선이 쭉 이어지는, 공룡의 옆모양이 된다.

전통적 기업은 공룡의 머리에 해당하는, 인기상품에서 90%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웹 2.0 사이트에는 온갖 참여자가 정보를 교류하면서 긴 꼬리에서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존(Amazon.com)에서는 오프라인이라면 1년에 겨우 몇 권 팔릴 책들의 매출이 3분의 1을 넘었다. 기존 개념으로는 도저히 서가에 꽂힐 수 없는 책들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내게 된 것이다. e-베이는 단 한 개의 재고품도 없으면서 매일 1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진다. 상당수가 과거에는 재고 창고에서 썩었을 물건이다

구글은 ‘애드 센스’(Ad-Sense) 독특한 광고를 개발, 긴 꼬리 정신을 실현했다.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개설한 개인이나 기업이 구글에 애드 센스 등록을 하면 구글의 컴퓨터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정보를 분석해 가장 적합한 광고를 싣게 한다. 이 사이트나 블로그의 클릭 수에 따라 광고주가 광고를 내도록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수익이 되냐고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구글의 직원 1인당 매출액은 한화 200억원(2000만 달러)로 천문학적 숫자다. 구글 1인당 매출액은 로또 당첨금의 10배인 셈이다.

구글은 현재 이용자의 e메일 내용을 자동적으로 분석해서 광고를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웹 2.0 흐름이 의료와 어떻게 접목할까.미국 최고의 의료 포탈 사이트 웹MD를 보면 웹 2.0의 기본 장치인 개인 블로그와 RSS(Really Simple Syndicate) 등을 통해 정보 공개와 교류가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RSS는 관심 주제에 대해 다른 블로그나 홈페이지 등에서 정보를 퍼오거나 다른 곳으로 퍼나가도록 돕는 장치다. 웹MD 뿐 아니라 국내의 블로그 이용자도 RSS 기능을 통해 미국 주요 학술지의 논문 가운데 자신의 관심 분야와 관련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의료와 관련한 블로그들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미국의 ‘Ves Dimov’s Clinical Cases and Images’라는 블로그를 보면 최신정보와 이용자의 참여가 웬만한 의료 전문 사이트 못지않음을 알게 된다.

의사들로서는 유쾌하지 않겠지만 병의원에 대한 정보도 급속히 번져 나갈 것이다.
미국의 헬스그레이드(Healthgrades.com)이라는 사이트에서는 의료기관 이용자가 병의원을 평가하도록 하고 열악한 기관에 대해서는 보이콧 운동을 벌인다. 한국에서도 의료 기관 이용자의 정보 평가 및 교류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며 현재 소규모이지만 일부 블로그에서 이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들의 위키피디아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출간돼 있는 의학백과사전을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수정하는 마당이 가능하며, 미국에서는 ‘www.ganfyd.org’라는 사이트에서 이 작업이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환자들과 의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해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도 충분히 가능하며, 의료 서비스 이용자들이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입장에서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일도 더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웹 2.0은 필연적으로 전자 의무 차트(EHR), U-Health 사업 등과 연계된다. 이들은 정보 공개와 교류, 정보 비대칭성 해소라는 큰 틀에서 보면 방향이 같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최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IT산업의 다음 투자 영역은 의료”라고 단언했던 것처럼 의료와 IT의 접목이 급격하게 일어날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목소리가 커나가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환자는 의사의 진정한 우군이 될 수 있으며, 사실 환자는 의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지 않은가.

IT 기술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일례로 많은 의사가 EHR을 시행하면 환자의 정보가 새나가 문제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기우(杞憂)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을 운영하는 업체에서 개인의 암호 정보를 가질 수 없도록, 암호가 이용됐다가 DB화하기 전에 사라지는 ‘휘발성 암호시스템(Volatile Security System)’ 등 수많은 기술적 장치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 환자 비밀 문제 운운하면 IT에 대한 무지만 드러내는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의사가 웹2.0과 새로운 IT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패러다임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이전의 것이 좋으면 이전의 것을 고수하면 된다. 어느 것이든 좋다(Anything Goes).

그러나 웹 2.0과 IT혁명이 의료계를 향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는 현실 자체를 거역할 수는 없을 듯하다. 만약 이 흐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떠밀려서 가기 보다는 주위에 우군(友軍)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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