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박사를 기리며

다가오는 24일은 성산(聖山) 장기려 박사의 열 한 번째 기일(忌日)이다.
성산은 평생 가난한 이웃을 보살피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안고 산 의사였다. 그는 춘원(春園)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제 모델이었다. 춘원이 “성인 아니면 바보”라고 말한 당사자로도 유명하다.
성산은 해방 후 평양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아내 김봉숙 여사와 5남매를 북녘 땅에 남겨 두고 차남 가용씨(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만 데리고 월남, 묵묵히 인술(仁術)을 베풀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그는 기독의사회를 조직해 행려병자를 위한 구호활동을 벌였고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 조합인 청십자(靑十字) 의료보험 조합을 설립 운영했다. 조합은 회원 723명으로부터 당시 담뱃값 100원에도 못 미치는 월 70원의 회비를 받는 것으로 시작, 국민의료보험 본격 시행으로 해산할 때까지 23만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치료비가 없는 환자에게 몰래 차비를 주고 뒷문을 슬쩍 열고는 “도망가라”고 넌지시 뚱겨주는 일은 성산에게 비일비재했다. 길 가다 만난 걸인에게 주머니 속 전 재산 10만원을 주기도 했다.
성산은 평생을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유산은 복음병원의 후신인 고신의료원이 병원 건물 옥상에 마련해준 24평 집 한 채가 전부였다.
그는 서울대 부산대 가톨릭대 등에서 숱한 제자를 길러냈고, 1959년 국내 최초로 간(肝)대량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외과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기여를 했다.
성산은 필자가 사회부 기자로 있던 1995년 성탄절 “나의 비문에 ‘주를 섬기고 간 사람’이라고 적어달라”는 유언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91년 미국의 조카로부터 북에 남기고 온 가족이 살아 있다는 소식과 함께 40년 만에 부인의 편지와 가족사진을 받은 뒤 재회의 그날을 손꼽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것이었다.
후일 차남이 선친이 못 이룬 이산가족 상봉을 할 때 취재 차 집을 방문했더니, 며느리 윤순자 안과원장이 대번에 알아보고 “그때 그 진드기 기자가 왔네”라고 반겼는데, 성산은 그 며느리가 혼수로 마련해온 새 이불을 고학생에게 선뜻 내주기도 했다.
최근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사업회가 그의 유지를 기리는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고 그의 전기도 몇 권 나왔다.

하지만 과연 성산이 지금처럼 삭풍이 부는 시기에 만인으로부터 의사의 모범으로 칭송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마 일부 얼치기 종북(從北) 좌파는 성산이 일제시대 일본 나고야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부르주아에다가 북의 인민을 배반한 의사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의사들도 과연 성산의 삶을 본받으려고 할지도 자신이 서지 않는다.
의약분업 사태 이후 언젠가부터 의료계에서는 ‘사회주의 의료 Vs 자본주의 의료’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시각’이 번지고 있다. 이런 시각으로는 성산의 그릇을 담을 수가 없다. 이 시각으로 보면 성산은 사회주의 의료에 가까운 것을 실천하다 떠난 분이다.
모든 의사가 성산처럼 살 수는 없고, 그것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범인에게 성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하지만 성산의 삶은 의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값진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성산은 서울 저동의 백병원에서 임종을 앞두고 문병 온 지인들에게 “요즘 후배 의사들이 사명감이 부족해 걱정”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며칠 전 만난 어느 의사는 의사에게 공익적 사명감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시각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의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공익과 이윤 및 산업은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의료는 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기본 토양이 며,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의사의 이윤 추구를 비난해서는 안 되겠지만, 공익 추구를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도 병(病)이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공익을 추구할 필연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순리이지, 공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의약분업 사태 때 정부가 의사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고 가면서 대립각이 생겼지만, 이에 대응하는 의사집단 역시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산의 기일이 의사란 어떤 존재이며, 어디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지에 대해 의사들끼리 좀더 본질적으로 토론하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필자의 주위에는 지금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무료진료를 하는 의사들, 가난한 환자의 진료비 때문에 고민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성산의 기일을 앞두고 그들의 고귀한 정신이 더욱 확산되고 평가받기를 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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