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이 유행이라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에 있다. 워싱턴DC의 북서쪽, 포토맥 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이 기관은 매년 30조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기관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인 300~400명을 포함해서 2700여명의 박사급 이상 연구원이 인류의 질병과 싸우고 있으며, 노벨상 수상자만 110명 이상이 나왔다. 당연히 세계 의학 뉴스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1일에도 NIH는 큼직한 뉴스를 내보냈으며 국내 언론에서도 베데스다에서 날아온 소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 암연구소(NCI)의 로젠버그 박사 팀이 말기 흑색종 환자 17명에게 유전자치료법을 시도해 2명에게서 뚜렷한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국내 대다수 언론이 ‘말기 암 환자 2명 유전자요법으로 완치’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완치(完治)’라는 용어를 여기에 써도 되는지 의문이 들지만, 이것을 제쳐두더라도 이 뉴스는 많은 것을 시사케 한다.

유전자치료는 1990년에 역시 NIH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당시 앤더슨 박사팀이 선천성 면역 결핍증 어린이에게 면역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전자를 넣어주는 치료법을 시도했고 눈에 띄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이전에는 세균 감염의 위험 때문에 병원 주위를 떠날 수 없던 어린이가 바깥 공기의 상쾌함을 알게 됐다고 알려진 뒤 세계는 ‘유전자요법 시대’에 들어서는 듯 했다.

‘과학 이론은 설명이 단순명쾌할수록 우수하다’는 ‘오컴의 면도날’론에 비추어 봐도 고장 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치해 질병을 고친다는 개념은 그럴싸했다. 각국의 과학자들이 유전자 치료법에 몰두했고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이 봇물을 이뤘다.

국내에서도 1995년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가 9명의 말기 피부암 환자에게 유전자요법을 시도했다. 허 교수는 지금도 그때의 임상시험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며 얼굴을 붉힌다.

이듬해에는 중앙일보에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문우철 교수가 P53 유전자로 간암 환자를 치료한다는 뉴스가 보도돼 전국의 간암 환자가 이 병원으로 몰리고 다른 의사들이 문 교수를 성토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인간의 한계를 아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학계는 유전자요법을 통해서도 인체가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라는 사실을 절감해야만 했다. 인체의 신비는 우주의 신비와도 같아서 한 겹 한 겹 비밀을 벗기면 두, 세 개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예상했던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물론, 예상치도 못했던 부작용 때문에 환자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결국 NIH의 해럴드 바머스 원장과 미국 의학계의 대가들은 긴급회의를 갖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과학자들이 오만했다.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포기 선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유전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연구비는 더 늘렸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추진도 신약 개발의 벽에 부딪힌 제약회사의 후원도 있었지만, 이런 배경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미국도 실수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를 어떻게 거울로 삼아 전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그 나라의 과학 역량이 있다고 한다면 너무 앞서 간 주장일까.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1990년대 유전자요법이 수많은 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1999년 벤처 열풍이 불자 유전자요법과 관련한 기업이 비온 뒤 대나무 싹 돋듯 생겨났다. 그러나 줄기세포 열풍이 닥치자 모두들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버렸다.

정부 차원에서 유전자요법을 포함해 유전자와 관련한 사업을 총괄하는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2003~2006년 2단계 총괄사업비는 285억 원으로 2005년 한 해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정부 예산 265억 원과 비슷하다. 민간에서는 ‘유전자요법’에 대한 투자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1990년대 말 암의 신생 혈관 생성을 막는 치료백신의 동물실험에 성공했던 한 과학자는 2일 필자와의 전화에서 “한때 여러 제약회사에서 관심을 기울였지만 줄기세포 바람이 불자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 버렸다”면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돈만 있다면…”하고 애를 태웠다.

문제는 한국적 과학 토양이라면 이런 유전자요법의 운명을 이제는 줄기세포 치료나 또 다른 미래의 치료법이 뒤따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데 있다.

과학자도 언론도 이제 줄기세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주저한다. 최근 미국 ACT사 연구팀이 8세포기의 수정란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실험에 성공했지만 대다수 한국 언론은 이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주저했다. 이런 식이라면 줄기세포 치료법 역시 유전자요법의 운명대로 한물간 유행이 될 수밖에 없다.

질병은 구세주(救世主) 같은 과학자가 나와서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유전자요법, 나노(Nano) 의학, 줄기세포연구에서부터 과거의 경험을 다시 찾아 활용하는 통합의학까지 인류의 온갖 노력을 합쳐야 한다. 특정 분야만 하더라도 논문 하나가 아니라 수 만, 수 십 만 편의 좋은 논문이 쌓여야 도약이 가능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과학의 큰 그림을 그리고 여기에 따라 하부 연구 분야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겠지만 과연 필요성을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같은 조직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특정관변 과학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과학도 더 이상 유행가가 돼서는 안 된다. 과학은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학문이다. 과학이 유행가가 되면 끝없는 좌절과 낭비만 남을 따름이다. 적어도 정부, 과학자, 언론은 자신이 씨를 뿌리고 있는지, 아니면 유행가를 좇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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