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중독 치료 외길

윤덕로 서울대 명예교수

아직도 연탄가스로 숨지는 사람이 있으니.

 1960년대 말 국내 최초로 고압산소장치

개발, 숱한 연탄가스중독 환자의 목숨을 구한 윤덕로(尹德老,74)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명예교수는 연탄가스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구공탄처럼 타들어간다.

국제유가 상승과 소득양극화로 연탄을 때는 가정이 늘면서 가스중독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윤 교수의 머리 속에서는

의대 교수 시절의 성과와 기쁨, 아픔이 교차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장치를 이용해 1969~1978 2,242명의 연탄가스중독 환자를 치료해 2,202명을 회복시켰다. 단일 병원으로서는 세계 최다의 치료 실적으로 각종 학술지에 인용되고 있다.

윤 교수가 고압산소장치를 개발했을 무렵 국내에서는 해마다 70만 명

이상의 연탄가스 중독 환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3,000

명은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는 목숨을 건져도 치매, 팔다리마비, 언어장애 등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연탄 난방 비율이

75%였던 우리나라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은 다른 어느 질환보다도 심각한 국민보건 문제였다.

외국에서는 당시 고압산소장치를 감압병(잠수병) 환자나 탄광, 공장 등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환자에게 주로

사용했다.

윤 교수는 1960년대 초 공군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외국의 고압산소장치를 응용해 1967년 동물임상용 고압산소장치를 개발했다. 이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1969년에 인명용 장치 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이 장치 200여대를 전국 병원에 공급해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살려냈다.

윤 교수는 의학은 사람을 살리는 학문이라며 의학을

실천하는 의사로서 서민들이 연탄가스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장비가 부족해 가족이 한꺼번에 가스에 중독 됐을 때 치료 순서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모자가 가스에 중독 됐는데 어머니가 더 위험했습니다.

가족은 종손인 아들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어쨌든 어머니를 먼저 치료했고, 다행히 15분 만에 깨어나 바로 아들을 치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긴박했던 순간이었죠.

윤 교수는 1999 1인용

고압산소장치 한 대를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이 장치를 1층 입구 안쪽에 전시하고 있다. 박혜령 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 장치는

60~70년대 궁핍했던 우리의 생활상을 대변하는 역사의 산 증거라고 설명했다.

◇ 윤덕로 교수가 1999년 9월에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 기증한 고압산소장치.
이 고압산소장치는 69년부터 10년 동안 2200여명의 연탄가스중독 환자를 살려냈다.

윤 교수는 생명현상을 다루는 것이 의학의 본질이다. 의학도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돈벌이가 기준이 될 수는 없다비록 요즈음 세태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의료철학은 두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장남 윤익진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와 차남인 윤태진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교수는 아버지의 정신을 잇기 위해 밤낮 없이 환자 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두 분야 모두 요즘 의사들의 인기 분야와는 거리가 멀고 이른바 3D로 꼽히기에 웬만한 체력과 열정이 없으면 힘든 분야다. 

장남은 최근 자신의 환자가 생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구에 뇌사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간 적출수술과 이식술을 시행했다. 오후에 내려가 수술을 하고 그 간을 갖고 새벽에 도착,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서 8시간 만에 환자를 구했다. 

차남은 복합심장기형 신생아를 여러 가지 수술을 함께 시행하는 하이브리드 수술

치료하는 등 이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소아심장외과 분야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아버지는 환자 치료를 위해 말보다는 끝없는 열정으로 행동하셨다

말했다.

이처럼 환자를 살리는데 평생을 보낸 윤 교수이지만 정작 자신은 최근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투병 중이다.

그는 돌이켜보면 참 즐거운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라며 의사로서

몇 백, 몇 천 명을 살릴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였다고 말했다.   

제자인 서울대 예방의학교실 강대희

교수는 선생님은 40여 년 동안 바른길만을 오롯이 지켜 오신 분이라며

교수님의 고압산소장치와 가스중독치료 기법은 한국 의학사상 기념비적인 업적이라고 말했다.

 

 

이상철 기자 rigel@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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