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닌 말’ 아기 옹알이의 비밀

아기의 옹알이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옹알옹알 거릴 때 입의 오른쪽이 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미 국의 언어심리학자 로라 안 페티토 박사는 생후 5개월에서 1년 사이의 아기 10명이 옹알이 하는 모습을 캠코더로 찍어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명쾌해졌다고 밝혔다.

또 그냥 소리를 지를 때에는 양쪽 입이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웃을 때에는 왼쪽 입이 실룩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티토 박사는 “이 사실은 사람의 언어 구사능력은 선천적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람은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언어를 일찍 배울 뿐이며 선천적으로 언어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각종 논거를 제시하는 반론도 쏟아졌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사람은 언어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한 지 45년이 지나 옹알이에 대한 관찰이 인간 언어 능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것이다.페티토 박사에 따르면 왼뇌는 몸 오른쪽의 움직임을 총괄하고 반대로 오른뇌는 몸 왼쪽의 움직임을 담당한다. 아기가 옹알이 할 때 입의 오른쪽이 주로 움직이는 것은 왼뇌의 작용이다. 왼뇌에는 언어중추가 있기 때문에 언어중추의 작용이 바로 옹알이라는 것이다.

반면 아기가 웃을 때에 입 왼쪽이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주관하는 오른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페티토 박사는 “아기는 태어날 때 뇌의 특정 조직이 발달해 있어 언어 행위인 옹알이를 한다”고 주장했다.예일대 심리과 및 언어학과 폴 블룸 박사는 “새에게서 지저귀는 능력, 벌들이 윙윙 나는 능력이 선천적인 것처럼 인류의 언어 구사능력 역시 선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옹알이가 언어를 배우는 전 단계라고 설명한다. 뇌에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본능이 있다. 즉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언어 구사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혀와 입을 정교하게 훈련해서 비로소 언어를 배우게 된다는 설명이다. 사람은 끊임없는 모방과 훈련을 통해 자기가 들은 언어를 말하고 이해한다.

옹알이는 이 과정의 앞 단계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언어연구소 엘리자베스 베이츠 소장은 “인류는 지구에서 완전한 언어를 쓰는 유일한 종(種)이다”면서 “인간은 지능이 있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언어를 배운다”고 말한다.

그는 아기가 옹알이 할 때 입 오른쪽을 주로 움직이는 것은 왼뇌가 언어를 담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교한 운동도 담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왼뇌는 오른뇌보다 복잡한 청각 자극에 더 잘 반응하며 옹알이 할 때 ‘말’보다는 ‘빠르고 연속적으로 나는 특정한 소리’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뉴욕대에서 사람의 의사소통에 대해 강의하는 존 로크 박사는 “옹알이는 자연상태에서 언어에 앞서 진화해 왔다”면서 옹알이를 하는 특정 원숭이의 사례를 들었다.

이 원숭이는 새끼가 옹알이를 하면 가족이 와서 보호하는데 사람도 옹알이가 엄마를 부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옹알이는 젖을 뗄 무렵 시작하는데 사람은 이 능력을 기초로 언어 구사능력을 발전시켜 왔다는 설명이다.

텍사스대 심리학과 피터 맥네이리지 박사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옹알이는 사람이 배우는 첫 단어의 바탕이 된다. 엄마를 뜻하는 영어 ‘마더(Mother)’는 옹알이 할 때 ‘므므므’하고 발음하는 것과 비슷하며 대부분의 엄마는 이 소리를 듣고 자신을 가리키는 줄 안다.

이에 대해 페티토 박사는 “음성이 언어의 핵심은 아니다”면서 언어 능력이 선천적임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청력을 잃은 아기와 부모가 청력을 잃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아기를 관찰했다. 두 경우 모두 아기는 옹알이를 하면서 1.5초 단위로 손을 움직였는데 손의 리듬은 정상적인 아기가 옹알이를 할 때와 차이가 없었다.

그는 “언어 능력이 후천적이라면 이들 아기는 정상적인 아기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라며 “뇌에 언어 능력이 이미 갖추어져 있고 자신의 처지에 맞게 혀와 손 등의 도구를 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크 박사는 “왼뇌는 노래와 관련된 율동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각종 연구 결과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할 때 오른손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이것은 율동 시스템과 관련 있지 언어 능력이 이미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베이츠 소장은 “인류의 뇌는 옹알이→단어의 첫 발음→기본적 문법의 자연적 체득→문장의 사용 등의 순으로 넘어가면서 관련 조직도 조금씩 바뀐다”고 설명한다.

어른이 되어야 언어와 관련해 고도로 발달한 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학습이 뇌를 조각(彫刻)하는 셈이다.

로크 박사는 2, 3세 때 옹알이를 바탕으로 언어를 배워서 적응하는 단계로 옮기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당신은 아이가 이 무렵에 ‘생쥐 두 마리’를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낱말 ‘생쥐’를 모방하는 단계를 뛰어넘는다. 말의 구조라는 측면에서 아기가 처음으로 창조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는 아이가 어떻게 게임을 할지를 안다는 증거다. 아이가 비로소 언어의 세계 출발선에 선 것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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