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혹시 우울증?

주부 조모씨(42·서울 강남구 역삼동)는 최근 딸 하나(초등 2학년)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하나는 방학인데도 밖에서 친구와 놀지 않고 방에 들어박혀 지냈다. 말을 걸어도 건성건성 대답하고 갑자기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조씨가 “왜 그러냐”고 몇 번을 되풀이해 묻자 하나는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요? 죽고 싶어요”라며 울먹였다.

하나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문제아는 아니었다.

소아정신과 의사는 뜻밖에도 하나가 ‘어린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남편의 아이에 대한 완벽주의가 큰 원인이라며 다음에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우울증은 생각이 너무 깊어 생기는 병으로만 알고 있던 조씨는 처음엔 “얘가 무슨 우울증?”이라며 갸우뚱했다.

▽어린이도 우울증 걸린다〓미국에선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의 1%, 초등학생의 2%, 청소년의 4.7%가 병원에 가야할 우울증 환자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초등학생 10명 가운데 한 명은 어떤 식으로든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본다.

의료계에선 1950년대에 이미 3, 4살 어린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밥을 안먹고 비실비실대는 등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1970년대까지 이것을 우울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삶의 궤적이 깊이 서린, ‘마음의 병’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뇌의학의 발달로 아이들도 우울증에 걸린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우울증은 뇌의 병〓우울증은 감정 조절, 학습 등과 관련있는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 시스템이 깨져 발생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키는 약을 먹이면 한 두 달 뒤 병세가 호전된다. 의학계에선 우울증이 유전적 원인에다 환경 요인이 겹쳐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부모의 부적절한 양육방법, 이혼, 가정 폭력 등이 어린이의 우울증을 부추기는 환경 요인.

▽가면(假面)우울증〓어린이는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 우울증과 다른 증세가 나타난다(그래픽 참조). 이 때문에 ‘가면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이를 방치하면 유아는 야뇨증, 청소년은 약물남용 등으로 이어져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방해한다. 어른이 돼서 재발할 위험성이 커지며 심할 경우 아이가 자살하기도 한다.

▽부모의 역할〓부모가 우울증을 낳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겐 어떤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며 자녀의 절대 순종을 기대하는 부모, 아이에게 지나치게 어른스러울 것을 강요하고 조그만한 잘못도 못참는 부모, 양육방법에 일관성이 없거나 무관심한 부모, 모주망태 부모, 아이를 심하게 욕하며 꾸짖는 부모, 매질이나 학대하는 부모의 자녀는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려운 일 없니?” “요즘 기분은 어때?” 라며 자녀의 상태를 자주 묻는 것이 좋다.

우울증으로 의심되면 병원을 찾는다.

우울증은 치료가 잘 되는 병이다. 병원에선 약물치료가 기본인데 우울증 약은 다른 약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중독성도 거의 없다. 아이에게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적절히 대처토록 하며 부모의 양육태도와 대화법 등을 교정하면 치료효과가 더 높아진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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