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우리사회 중독증의 실체

근무시간에 툭하면 사이버 주식투자를 하다 상사에게 들켜 혼나던 박모 씨는 퇴직한 뒤 주식투자를 계속하다 퇴직금 1억여 원을 날렸다. 뒤늦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아내(36)가 벌어준 2000만원은 여섯 달 만에 경마장에서 날렸다. 무일푼이 된 요즘엔 컴퓨터게임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 두문불출….

우리 사회가 ‘중독증’을 앓고 있다. 주식중독증 때문에 남편과의 성생활 때에도 눈을 감으면 주식시세판이 떠오른다는 주부에서부터 머드게임에 빠져 직장을 때려치운 직장인까지. 정신의학자들은 각종 중독증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한가지 정신병리현상의 여러가지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주식중독 경마중독 게임중독에 연거푸 빠진 박씨처럼 한 가지에 중독되는 사람은 다른 것에도 중독되기 쉽다는 것. 또 중독되기 쉬운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중독은 뇌질환

연세대의대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등 중독은 악행(惡行)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고 말한다.

뇌생리학적으로 중독은 시상하부와 편도핵 등이 속한 변연계의 이상 때문. 특히 뇌에서 도파민 베타앤돌핀 엔케팔렌 등 쾌락과 진통을 맡는 물질이 나오는 ‘쾌락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쾌락시스템은 자신이 원하는 자극이 없으면 ‘침묵’하고 특정자극이 생기면 다량의 쾌락물질을 내보내 만족한다. 논리적 사고를 맡는 대뇌피질 이마엽이 후회하지만 쾌락시스템이 더 강한 자극을 달라고 응석부리는 것을 제어할 수 없다.

미국의 정신과질환 진단목록인 ‘DSM―Ⅳ’에는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니코틴중독 등을 ‘의존적 질환’,도벽 도박장애 등을 ‘충동조절장애’로 분류한다.

많은 의사들은 이 두가지에 쇼핑중독 주식중독 이성중독 사이버중독 게임중독 폭식증 등을 중독증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모두 뇌 쾌락시스템이 비슷하게 고장났다는 것. 따라서 한가지 중독의 치료제가 다른 중독의 치료제로 쓰일 수도 있어 미국에선 알코올중독치료제를 폭식증 치료제로 쓸 수 있는지 임상시험 중.

●중독되기 쉬운 사람이 따로 있다

쾌락시스템의 고장은 선천적으로 뇌구조가 부실하거나 젖먹이 때 뇌회로가 잘못 형성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뇌가 튼튼한 사람은 똑같은 일을 해도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쉐크터는 “무슨 일이든 중독되기 쉬운 ‘중독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의학계에선 △책임감이 없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욕구과다, 특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많은 사람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 △좌절감을 못견디는 사람 △‘왕따’‘공주’ 또는 ‘왕자’가 중독자가 되기 쉽다고 말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가진 아이가 나중에 알코올 약물중독 등에 빠질 위험이 크다. 또 충동성 강박장애 불안 우울증 등도 중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백상빈교수는 “선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중독되기 쉬운 사람이 특정한 계기에 따라 특정한 중독에 빠지는 것”이라고 설명.

●중독증의 치료와 예방

자신이 중독임을 인정하고 도와달라는 사람은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자신은 문제가 없는데 왜 주위에서 난리냐는 사람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모든 중독의 치료법은 비슷하다.

△일단 환자를 입원시켜 중독이 있는 환경으로부터 격리한 뒤 △충동 불안 우울 등의 원인을 없애고 △충동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면서 상담치료한다. 또 일부 병원에선 환자끼리의 모임을 소개한다.

가족 중 중독자가 있는 사람이나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사람은 ‘중독거리’를 피하는 것이 예방법.

또 아이들에게 젖먹이 때부터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많은 얘기를 나누는 등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키워 미래의 중독자를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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